나의 이야기

2017. 3. 24. 고양이의 봄

아~ 네모네! 2017. 5. 26. 15:18

고양이의 봄

아 네모네 이현숙

   새벽에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간다. 고양이가 골목을 가로질러 자동차 아래로 몸을 숨긴다. 배가 불룩하니 아래로 쳐졌다. 뱃속에 새끼가 있나보다. 새벽바람은 찬 데 고양이 뱃속에는 이미 봄이 왔다.

높은 나무에 앉은 까치 입에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물려있다. 작년에 쓰던 집을 보수하여 새로 신방을 차리려나보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봄이 오면 기지개를 펴고 깨어난다. 짝을 찾아 후손을 남기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눈에 띤다.

   망우산에 오르면 딱따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겨울에는 조용하더니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 나무줄기를 쪼아대는지 모르겠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짝을 찾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분명히 서로 대화를 하는 것 같다. 따뜻하고 먹을거리가 많은 여름철에 새끼를 키우려는 동물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를 만난 것이고 부부는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이라고 한다.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식에게는 평생 모든 것을 해주어야하고, 부부는 평생 동안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볼수록 맞는 말이다.

   사실 결혼하여 애 낳고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감행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언젠가 TV에서 남극 펭귄이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걸 본 적이 있다. 알이 얼지 않도록 발 위에 얹어 놓고 앞가슴 털로 폭 감싼 모습이 감격스럽다. 부부가 교대로 바다에 나가 먹이를 잔뜩 먹고 돌아와 다시 토해 반쯤 소화된 물고기를 먹이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수십 만 마리가 넘는 펭귄 떼 속에서 어떻게 자기 새끼를 찾는지 생각할수록 희한하다. 어쩌다 어미를 잃은 펭귄은 죽기 십상이다. 어미는 자신의 새끼가 아니면 먹이를 주지 않는다. 계모가 전실 자식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본능 때문인지 모른다.

   펭귄이 이런 고통을 감수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명령 때문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새끼의 강한 욕망에 어미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일까? 아기가 밤에 마구 울어대는 것은 부모가 잠을 못 자게 하여 동생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이기적 자아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결혼하여 일주일쯤 지나니 결혼한 것이 후회되었다. 엄마가 해주던 밥 먹고 편안히 직장 다니다가 새벽부터 일어나 밥하고 저녁에는 퇴근하기 무섭게 시장 들러 어깨뼈가 빠지도록 장을 봐야한다. 집에 오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 무엇인가 만들어야 하는 생활이 너무도 힘들고 괴로웠다. 내가 왜 결혼을 했지? 아니 모든 인간들은 이 힘들고 괴로운 결혼을 왜 할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이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결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애를 두 명 낳으니 이건 설상가상이다. 두 팔 두 다리가 벌려진 채 고정된 쇠고리에 꽉 묶인 기분이다. 이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수쇄요 족쇄다.

   이런 고행을 모든 동식물이 목숨 걸고 해내는 이유는 자연의 거대한 섭리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 안에 있는 나의 후손이 세상 밖에 나오려는 강력한 의지가 나를 이기고 나를 지배하는가보다.

   요즘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서 그런지 이런 자연의 섭리도 방향을 잃었다. 뭔가 질서가 깨진 것 같다. 자연의 의지가 점점 약해지기 때문인지 도무지 애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다. 애는 고사하고 결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혼자서 자유롭게 즐기며 살다가 죽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밥족, 혼술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식이 주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기의 재롱을 보면 신비에 가깝다. 말을 배울 때 아침저녁 달라지는 단어와 문장을 보면 또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 작은 머릿속에 어떻게 그 많은 생각이 들어갔는지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이 맛에 모든 부모들은 정신 줄을 놓은 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마나보다.

   자식이 태어난 지 삼년 동안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부모는 이 기간에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받는 것 같다. 그 천진한 웃음과 평안한 얼굴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얻는가?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은 결혼한 것이고 더 잘 한 일은 자식을 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애, 결혼, 자식을 모두 포기한 삼포세대들도 마음 고쳐먹고 어서 결혼하여 예쁜 아기 낳고 인생의 참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