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10. 1. 빈 잔이고 싶다

아~ 네모네! 2015. 11. 20. 16:11

빈 잔이고 싶다

아 네모네 이현숙

 

  몇 달 간 새벽기도에만 나오던 남자가 있다. 시각장애인이다. 자신은 목사라고 했다. 지하철 2호선에서 구걸을 하는 시각장애인이 옆 칸으로 가려는데 구두 뒤축이 보인다. 낯익다. 그 남자다. 새벽기도회가 있는 우리 교회 지하실에는 신장에 신을 벗어두고 들어간다. 거기서 보던 구두다.

  그런 그가 갑자기 구미에 목회를 하러 간다고 한다. 새벽기도에 나오던 교인들이 2만원씩 걷어 주며 격려했다. 그가 가면서 우리 교회 목사님에게 찬송가 반주기가 필요하다고 했나보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며 도와주자고 예배시간에 말씀하셨다. 교인들이 또 헌금을 해서 그에게 전달했다.

  그 후 산에 갔다 오다가 분당선을 탔다. 그 남자가 보인다. 구걸하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있다. 아니 구미에 간다더니 왜 여기서 구걸을 할까? 순간 우리가 사기 당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목요일마다 수필교실에 간다. 7호선에서 2호선 쪽으로 가려면 껌팔이 할머니가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그곳에 올 수 없는 상태다.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다. 하루 종일 시멘트 바닥에 앉아 플라스틱 바구니에 껌 몇 통 넣고 한 개에 천 원씩 판다. 무릎이 머리까지 올라온다. 화장실은 계단을 내려가 반대편 쪽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어떻게 화장실에 가는지 궁금하다. 아니 기저귀를 차고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도 건대역에서 내려 2호선 쪽으로 가는 길에 멀리서 보니 할머니가 안 보인다. 비가 와서 못 왔나보다 하고 다가가니 허리를 구부리고 바구니에 껌을 담고 있다. 허리가 너무 구부러져 얼굴이 거의 땅에 닿을 지경이다. 얼핏 보아도 다리가 엄청 길다. 바로 서면 꽤 큰 키가 될 것 같다. 천 원을 바구니에 넣으니 얼른 껌을 주려고 한다. 나는 껌을 씹지 않으니 괜찮다고 그냥 에스컬레이터로 간다. 만날 때 마다 천 원씩 주면서도 또 의심을 한다. 누군가 할머니를 이용해 여기다 갖다 놓고 돈을 뺏어가는 것은 아닐까?

  TV 뉴스 시간에 어떤 시각장애인 부부가 30년간 거지 생활로 14억을 벌었는데 남편이 12억을 가지고 도망갔다. 부인이 분해서 이혼 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부가 30년 넘게 선생을 했어도 12억은커녕 1억도 없는데 어떻게 기술적으로 구걸을 했기에 12억을 가지고 사라졌을까? 둘이서 불구자 행세를 하며 지하철을 돌아다녔나?

  이런 내 모습을 보며 편견과 의심으로 가득 찬 잔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투명한 빈 잔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