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5. 7. 31. 캄차카 기행문

아~ 네모네! 2015. 7. 31. 17:30

가봐야 알것슈~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5719~ 726

장소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캄차카 반도

 

 

  블라디보스톡과 캄차카 반도는 지리시간에 많이 들어보던 곳이지만 내가 여기 발을 디딜 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다. 우리나라 국위가 선양되고 나라 경제가 좋아져 나 같은 서민이 여기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블라디보스톡 ( 719)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려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사방은 깜깜하여 심란하기 그지없다. 공항에 도착하니 김사장님이 라면, 비빔밥, 쵸코파이, 스프, 커피 등을 나누어준다. 군대는 안 가봤지만 군대 위문품을 받는 기분이다.

  비행기에 앉아있으려니 줄방구가 나온다. 비행기 안의 기압이 지상보다 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세 시간의 비행 끝에 블라시보스톡 공항에 내리니 눈이 시리도록 강한 햇볕이 쏟아진다. 가이드 김용인씨가 T.N.T.라는 종이를 들고 우리를 맞는다. 우리 팀은 걷기(trekking)와 여행(travelling)을 하는 팀이다. 그래서 그룹 이름도 T.N.T.로 지었다. 용인씨는 내 트렁크를 얼른 받아 끌고 간다. 머리가 허여니까 내가 최고 연장자인 줄 알았나보다.

  블라디보스톡은 중국 땅이었는데 1860년 러시아 땅으로 되었다. 여기에 해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1992년까지 출입이 통제 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9288km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지다. 언젠가 한 번 이 열차를 타보고 싶다.

  버스에 오르니 러시아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꽂혀있어 우리를 반긴다. 버스에 오르는 계단에는 어서 오십시오. 신발을 톡 톡 털어주세요.’라는 한글이 그대로 쓰여 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차인가보다.

용인씨는 버스에서 러시아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한다. 러시아는 모계사회였기 때문에 여권이 세고 이혼을 해도 자녀에 대한 친권을 여자가 갖는다고 한다. 러시아에는 세 가지 40이 있단다.

첫째 40이 넘어서 예쁜 여자가 진짜 미인이다.

둘째 40도가 안 되면 술도 아니다.

셋째 영하 40도가 안 되면 추위가 아니다.

간단한 러시아어를 가르쳐주는데

안녕하세요? 는 쁘리벳

화장실이 어딥니까? 는 그제 뚜알렛

감사합니다는 스파씨바 인데 발음을 잘하라고 한다.

라이터는 자지깔까 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블라디보스톡 시내 중심가를 걷다가 굼백화점이란 건물이 보이자 용인씨가 이 건물은 독립운동가 최재형씨의 소유였다고 한다.

  최재형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인데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시 재무총장을 맡았다. 러시아식 이름은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다. 그는 군수업으로 부를 쌓아 거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지원에 사용했다.

  그는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최흥백도 노비였고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최재형은 아홉 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국인들이 정착해 살고 있던 러시아 지신허에 갔다. 어렸을 때 배고픔 때문에 가출한 최재형은 항구에서 우연히 만난 러시아 선장 부부의 보살핌을 받았다. 선장의 아내는 학식이 뛰어났다. 선장의 아내는 최재형에게 러시아어와 서양학문을 가르쳤고, 선장은 최재형이 해외에서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최재형은 군수업으로 1년 수입이 10-12만 불에 달하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최재형은 한국인들을 직원으로 고용했는데, 이로 인해 절대빈곤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최재형은 모든 재산을 항일운동을 위해 대부분 사용하였다. ‘대동공보를 발행하여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던 최재형에게 안중근의사가 찾아온다.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장소를 하얼빈으로 정해, 일본이 아닌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조치하고, 변호사인 미하일로프 주필을 안중근의 변호인으로 준비한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자, 최재형은 자신이 안중근 의사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자책감을 느껴 안중근 의사의 부인과 아이들을 보호하였다. 이 사건으로 연해주의 한국인들은 더욱 러시아의 감시를 받게 되었고, 권업회를 창설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최재형도 그를 간첩으로 몬 일본 사람의 음모로 체포되었다. 곧 무혐의 결정으로 석방되었으나, 러시아정부에서 더 이상 그와 상거래하지 않음에 따라 경제적 궁핍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최재형은 한 초라한 집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20년 러시아의 일본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에 침입한 일본군에 의해 총살당하고 말았다. 당시 최재형의 나이 63세였다. 현재 그의 손자 최발렌틴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꿈백화점을 지나 개선문과 잠수함 박물관을 보았다. 이 잠수함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것을 내부를 볼 수 있게 개조한 것이다. 3층 구조인데 2층을 개방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규모가 생각보다 무척 컸는데 어찌나 더운지 완전 찜질방 수준이다. 영원의 불꽃도 보고 해양공원의 한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니 바다도 보이고 주위의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공연히 생긴 게 아닌가 보다.

  오후 관광을 마치고 아리랑이란 한식집에 들러 동태탕을 먹고 아지무트 호텔에 들었다.

 

 

 

 


페트로파블롭스크 ( 720)

  새벽 4시 반에 도시락을 받아들고 다시 공항으로 갔다. 블라디보스톡 공항을 출발하여 3시간 20분을 날아가니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롭스크 공항에 내린다.

  캄차카라는 지명은 원주민이 곶이라는 뜻의 캄차다르라고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베링은 1725년과 1733년 두 번에 걸쳐 캄차카 탐험을 하였는데 아바친스카야 만 입구로 들어올 때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란 작은 배로 입항하였다. 그 후 이 배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페트로파블롭스크라고 붙였다.

  공항에 내리니 햇볕이 어찌나 강한지 산 채로 살이 익어버릴 것 같다. 도착한 사람들은 청사로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짐이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는 하나 밖에 없는데 모스크바에서 온 사람들의 짐이 나오느라 맨 땅에서 마냥 기다렸다.

  가이드 이규열씨와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아저씨가 우리를 맞는다. 가이드 보조라고 한다. 보조 가이드는 이규열씨를 영감님이라고 했다가 감독님이라고 했다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규열씨는 보조 가이드를 달건이라고 부른다. 달건이 뭔가 했더니 건달을 뒤집은 것이다. 서로가 물고 뜯으며 장난치는 톰과 제리를 보는 듯하다.

  두 사람을 만나 함께 그늘을 찾아가 서서 한 없이 기다리려니 볼 일을 보고 싶다. 밖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청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려면 엑스레이 검사를 받아야 하니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청사로 들어가 화장실에 들렀다. 공항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화장지도 없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낄 즈음 모스크바에서 온 사람들의 짐이 다 나오고 우리 짐이 나온다. 여기서는 수하물 표의 번호와 짐에 달린 태그의 번호를 일일이 확인하고 내보낸다. 하긴 하도 협소하고 사람이 많아 누가 남의 짐을 가지고 나가도 알 수가 없게 생겼다.

  아바차항으로 이동하여 베링 해 크루즈를 한다고 해서 북유럽에서 본 커다란 배를 생각했더니 조그만 유람선 수준이다. 우리 일행만 태운 배가 항구를 떠나지 않고 제 자리에서 멈추어 선 채로 뱅뱅 돈다. 선원은 우리에게 성게알도 주고 연어탕도 준다. 군함이 훈련 중이라 훈련을 마치고 들어와야 일반 배들이 출항 할 수 있다고 한다.

  군함이 들어오는 걸 보고 곧 출발할 줄 알았더니 계속 들어온다. 바다에 떠서 또 마냥 기다렸다.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리니 다른 배들이 나가는 게 보인다. 우리도 겨우 항구를 떠나 한 시간 이상 달리니 비행기에서 보았던 삼 형제 바위가 나타난다. 배 양쪽에 낚싯대를 설치하고 바다낚시를 하라는데 생선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얼씬도 안한다. 우리 배의 선원이 잠수복을 입고 물로 들어가 성게와 불가사리 등을 잡아와서 구경시킨다. 낚시의 달인이라고 생각했던 형탁씨도 헛손질만 계속할 뿐 생선은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다들 헛손질만 하다가 포기했다. 순환씨는 멀미가 나는지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나는 멀미약을 먹었더니 견딜 만하다.

  결국 멸치 한 마리 못 잡고 다시 항구로 돌아와 호텔로 갔다. 우리가 들어가려고 했던 아바차 호텔은 방이 없어 옥짜브리스카야 호텔로 갔는데 말이 호텔이지 여인숙 수준이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그 큰 짐을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갔다. 복도는 삐걱삐걱 문짝은 우지지직 하루 세끼 밥 먹고는 문 열고 닫기도 힘들다.

  세면대에는 수도꼭지도 없어 욕조에 있는 수도를 틀어 이를 닦아야한다. 정원식님이 먼저 샤워를 한다고 들어가더니 물이 너무 차서 할 수가 없다고 나온다. 나는 아예 샤워를 포기하고 이만 대충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환상의 화산 트레킹 ( 721)

  아침에 물어보니 다른 방은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고 한다. 저녁에 다른 방으로 옮겨가기로 했다.

6륜구동의 어마어마한 차를 타고 아바친스키 화산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2시간가량 가니 해발 850m인 캠프가 나타난다. 집이 몇 채 보이고 차도 보인다. A팀은 2741m 정상까지 가기로 하고, B팀은 낙타봉까지 가기로 했다.

  화산재와 작은 돌들이 많다고 하여 스패츠를 한 후 스틱을 짚고 산행을 시작했다. 작은 숲 사이로 들어가자 모기들의 집중 공격이 시작된다. 볼 일이라도 보려면 엉덩이를 부지런히 문지르며 모기의 접근을 막아야한다. 산에는 온갖 야생화가 그야말로 지천에 깔렸다. 장구채, 암매, 노란 개불알꽃 등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몸을 떨며 우리를 반긴다.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그 매력에 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리는 모습이 몸서리를 치는 듯도 하고 진저리를 치는 듯도 하다. 아니 오르가즘을 느껴 몸을 떠는 것인지도 모른다. 식물들은 무슨 요술을 부리기에 시커먼 흙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색소를 뽑아 올려 이다지도 아름다운 몸매를 만들어내는지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하다.

  한참을 오르다가 바위 뒤에 웅크리고 앉아 김밥을 먹었다. 정연씨가 만들어온 오이지가 칼칼하니 입맛을 돋운다. 앞에는 검은 화산재와 흰 눈이 줄무늬를 이룬 화산이 얼룩말처럼 기이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멀리 발아래는 설산 아래 구름이 깔려있다.

  네 시간 정도 오르니 무인 대피소가 나타난다. 안개가 수시로 몰려와 산을 넘는다. 달건씨는 감독님이 계속 전화를 하는 바람에 배터리가 다 나갔다고 툴툴댄다. 밑에서는 우리가 구름에 가려 안 보이니까 불안하여 왜 안 내려오느냐고 성화다. 우리는 정상이 뻔히 보이는데 되돌아갈 수 없어서 계속 전진했다. 달건씨는 다리에 쥐가 나서 대피소에 머물고 원장님이 선두에 섰다.

  수시로 비가 뿌려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올라가는데 아이젠을 해도 화산재와 굵은 모래가 뒤덮여 한 발짝 올라가면 두 발짝 미끄러진다. 눈도 많고 녹아서 5천 미터 고산에 오르는 것처럼 제 자리 걸음이다.

  대피소에서 두 시간을 더 오르니 정상이다. 영원히 나타날 것 같지 않던 정상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먼저 올라간 원장님과 미숙씨가 서 있는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정상에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유황냄새가 진동한다. 러시아인 네 명이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곳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느긋한 러시아인들의 정서가 부럽기도 하다.

  유황냄새도 독하고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여 인증 샷 하나 찍고 바로 하산했다. 미숙씨는 눈밭이 나오자 즉시 엉덩이를 깔고 눈썰매를 탄다. 순식간에 까마득하게 내려간다. 나는 미끄러질까봐 한 발 한 발 스틱을 짚고 내려오는데 양숙씨도 겁이 나는지 조심조심 걸어 내려온다. 조금 내려오니 김사장님이 보이고 더 내려가니 최창욱님과 박명수씨가 올라온다.

  다리가 풀려 어기적 어기적거리며 대피소에 도착하자 나를 보고 3호 괴물이란다. 첫 번째로 내려온 미숙씨가 1호 괴물, 두 번째로 내려온 양숙씨가 2호 괴물이라고 달건씨가 별명을 붙였다.

  대피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기다리던 사람들과 다 함께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운해와 설산은 어찌나 장엄하고 아름다운지 가슴이 벅차다. 더 내려오니 야생화 밭이다. 온갖 야생화가 카페트처럼 깔려서 바람에 몸을 떠는데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우리는 눈밭을 걸어 내려왔는데 뒷사람들은 눈썰매를 타며 기성을 지른다. 김 사장님은 청룡열차보다 재미있다고 하고 정연씨는 살려주세요.’를 연발하며 내려오고 있다.

  낙타봉을 지나 차로 돌아오자 미리 와 있던 순희씨가 닭도리탕과 정연표 오이지무침, 멸치볶음, 달건이가 만들어온 명이 나물로 한 상 차려준다.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한 우리는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닭도리탕은 감독님 솜씨라는데 맛이 일품이다.

  호텔로 돌아와 옆방으로 옮기니 뜨거운 물이 철 철 쏟아진다. 원장님은 방에 가자마자 다들 뜨거운 물로 찜질을 하라고 회원들 건강을 챙긴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열 시간이 넘는 산행에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무감각하다. 아침까지 시체처럼 골아 떨어졌다.

 

 

 

 

 

 

 

 

 

 


비스트라야강 래프팅 ( 722)

  말깐스카야 비스트라야강으로 이동하여 래프팅과 낚시를 하기로 했다. 캠프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니 송어회와 연어탕을 준다. 송어회는 옆에 앉은 두 남자가 오전에 잡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들이 여기 래프팅 가이드인 줄 알았더니 자기들도 낚시하러 온 사람이라고 했다. 곰을 보았느냐고 물으니 발자국만 봤단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오르니 저절로 흘러내려간다. 비스트라야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라더니 과연 이름에 걸맞게 물살이 엄청 빨랐다. 말이 래프팅이지 우리나라에서처럼 노를 젓는 게 아니고 그냥 물살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다. 가이드 혼자서 노를 저으며 고기가 있을 만한 물가로 간다

  릴낚시를 하라는데 던지는 법을 몰라 가이드가 가르쳐주는 대로 던져도 얼마 못 가고 가짜 미끼가 물에 떨어진다.

  다들 헛손질만 하며 물고기 코빼기도 못 보았다. 비는 간간이 쏟아지고 비바람이 몰아쳐 추위가 엄습하니 어서 빨리 끝나기만 바란다. 세 시간 반이 언제 가나 하며 배에 쪼그리고 앉아 강물에 떨어지는 빗방울만 바라본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가이드가 갑자기 휘쉬하고 소리 지른다. 낚시 끝을 바라보니 팔뚝만한 송어가 몸을 솟구친다. 줄에 매달려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바늘이 빠졌는지 물로 다시 도망쳐 버렸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래도 물에 고기가 있기는 있나보다고 본 것만도 행운이라고 하였다.

  중간에 강가에 내려 잠시 휴식을 하였다. 형탁씨와 최사장님은 얼음같이 차가운 강물에 들어가 연신 낚싯줄을 던지지만 식사시간이 아닌지 물고기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다시 배를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려오는데 가이드가 휘니쉬하며 앞을 가리킨다. 종점이란 소리를 들으니 귀가 번쩍 뜨이고 생기가 돈다. 우리는 역시 물은 아니다. 바다고 강이고 호수고 모두 산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저 산에 갖다 풀어놔야 다들 힘이 솟아 동서남북 뛰어다닌다.

  돌아오다가 오제르스크 노천온천에 들렀다. 시냇물이 흐르는 옆에서 온천수가 솟아올라 김이 피어오른다. 차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냇가의 물웅덩이로 들어갔다. 이끼가 많아 미끌미끌하다. 온천수가 나오는 구멍 근처는 너무 뜨거워 조심조심 다가간다. 강에서 비 맞으며 얼어붙었던 몸이 일순간에 확 풀린다.

  온천욕을 마치고 차 옆으로 오자 달건씨가 숯불을 피우고 철망을 얹어 바비큐 준비를 다 해놓고 감독님은 차 안에서 삼겹살을 써느라고 낑낑대고 앉아있다. 영화감독인지 축구 감독인지 요리감독인지 몰라도 우리 해 먹이려고 열심히 칼질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우리가 옷좀 갈아입게 잠시 나가라고 하자 돈 주고 보라고 해도 안 보니까 그냥 뒤에서 갈아입으슈~ 한다. 감독님은 고향이 충청도라 그런지, 일부러 재미있으라고 그러는지 사투리가 심하다. 우리가 무엇이든 물어보면 러시아에서는 모든 것이 가봐야 알것슈~” 한다.

  자작나무 숯불에 구은 삼겹살은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는다. 냄새도 안 나고 연기에 그을려져 은은한 향기가 난다. 양숙씨와 나는 돼지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먹을 만했다. 삼겹살 구이에 라면과 햇반을 먹고 감자구이까지 해 먹으니 천하의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하지만 모기가 어찌나 많은지 모기떼의 집중공격에 헌혈좀 해야 한다. 너구리 잡듯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모기의 습격을 받으며 미숙씨와 순환씨는 끈질기게 불에 붙어 삼겹살을 구어 낸다. 우리는 모기 무섭다고 차에 앉아 받아먹기만 했다. 다들 배 두드리며 호텔로 돌아왔다.

 

 

 

 

 


웬 코맹맹이 소리? ( 723)

  아침부터 비가 철철 내린다. 차가 늦게 온다고 하여 아침 산책을 나가자고 하니 신발 젓는다고 다들 포기하고 도로 들어간다. 정원식님과 달건이, , 셋이서 호텔 주위를 산책했다. 호텔 옆 작은 공원에 칼과 교회 모형을 든 동상이 있다. 니콜라이 1세 동상이라고 한다. 왼손에는 교회를 들고 오른 손에는 칼을 들었다. 신앙이 아니면 죽음을 받으라는 메시지인가보다.

  그 옆에는 크리미아 전쟁 추모공원이 있다. 동산 위에는 기념교회가 있다. 기념탑인 줄 알았더니 작은 교회였다. 교회 앞 십자가에는 꽃다발이 걸려있다. 누군가 추모하러 왔었나보다. 비를 철 철 맞고 있는 꽃다발을 보니 전쟁에서 사라져간 젊은 청춘이 안타깝다. 그는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호텔 근처에 많은 사람들 사진이 전시된 곳이 있어 무엇인가 했더니 캄차카의 유명인사들인데 가끔씩 사진이 바뀐다고 한다.

  오늘은 아바차 강가의 제대로 된 온천장에 가기로 했다. 얼마를 달려 한 온천장에 도착하니 오늘은 청소중이라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감독님과 달건씨는 잠시 상의하더니 다른 온천장에 가자고 한다. 조금 더 가니 레스토랑이 딸린 야외 온천장이 있다. 여기서 식사를 하려고 하니 재료가 없단다. 러시아식 만두 밖에 없다고 하여 만두를 시키고 우리가 가져간 비빔밥과 라면을 먹었다. 러시아에서는 정말 가봐야 안다. 도무지 미리 계획한 대로 되는 게 없다.

  점심 식사 후 온천장 근처 산책을 했다. 아바차 강가에는 방갈로가 많았는데 하루에 4만 원 정도면 빌릴 수 있다. 생일이면 이런 곳을 빌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한다. 강가에는 쥐손이풀, 관중, 삿갓나물, 당귀, 속새 등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고 작은 집들과 어우러져 동화의 나라에 들어온 듯하다.

  길 가에 네 잎 크로바가 보이기에 따서 금옥씨를 주며 린이 갖다 주라고 했다. 금옥씨는 외손녀 린이를 봐 주는데 해외에 나오면 손녀 생각에 눈물이 글썽 글썽해진다. 그새 보고 싶다는 것이다. 금옥씨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니 나도 괜히 눈물이 난다.

  안쪽 마을 사이로 가니 여기도 야생화 천국이다. 매발톱, 하늘 말나리, 마주송이, 눈개승마, 터리풀, 장구채가 널려있다. 우리는 야생화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 키만한 풀에 분홍빛 꽃이 예뻐서 찍으려는데 달건씨가 이 꽃이 이반차이꽃이라한다. 이반 황제 이 꽃을 말려 만든 차를 즐겨 마셨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길옆에는 미끄럼틀도 있는데 겨울에 얼음이 얼면 얼음썰매를 탄다고 한다.

  산책을 마치고 온천장으로 갔다. 여기는 탈의실도 있고 샤워실도 있는 정식 온천이다. 온천수로 채워진 풀장에 들어서니 햇빛이 강해 그늘에서만 왔다 갔다 했다. 순환씨는 물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 서서 자기가 에어로빅 강사라고 우리에게 이런 저런 시범을 보인다. 우리가 물속에서 따라하며 깔깔대니 온천 직원 여자가 우리를 내다보며 재미있는지 웃음 짓는다. 원장님은 수경이 잘 안 맞는지 풀장 구석 햇빛에서 연신 수경을 주무른다. 양숙씨가 이 모양을 보고 이 잡느냐고 웃어댄다. 하긴 우리 어렸을 적에만 해도 겨울철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이 잡는 모습을 종 종 볼 수 있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샤워장에 오니 푸른색 팬티와 윗옷이 걸려있다. 우리 팀 것인지 알 수 없어 그냥 나왔는데 나중에 온천 직원 여자가 이 옷을 들고 밖으로 나오며 누구 것이냐고 한다. 순간 정연씨가 자기 것이라고 달려간다. 속옷도 버리고 나온 걸 원장님이 알면 혼난다고 갖다 감춘다. 잠시 후 원장님이 나오는 걸 보더니 달려가서 한 쪽 콧구멍을 막고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아양을 떤다. 우린 이 모습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배꼽 잡고 웃었다.

  이렇게 또 하루를 노냐 노냐 놀다가 시내로 돌아왔다. 코리아 하우스에서 저녁을 먹는데 밥과 소고기 감자국에 반찬이 여섯 가지나 나온다. 이게 다 인줄 알고 배부르게 먹었는데 난데없이 또 돈까스가 나온다. 아뿔사 밥은 본 메뉴 전에 나오는 애피타이저였던 것이다. 배가 불러 돈까스를 조금만 먹었다. 이게 끝인 줄 알았더니 또 나온다. 후식으로 생선회가 나오니 안 먹을 수 없다. 결국 한식, 양식, 일식까지 먹은 셈이다.

  배 두드리며 호텔로 돌아오는데 KGB 건물도 보이고 다른 건물도 보였는데 건물 밖으로 덧붙인 기둥들이 있다. 달건씨 말로는 이곳에 지진이 많아서 건물이 쓰러지지 않게 건물 밖으로 기둥을 붙인다는 것이다. 하긴 캄차카 반도가 태평양 연안에 있으니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곳이라 지진이 많을 것이다.

 

 

 

 

 

 

 

 

 

 


기다림의 연속 ( 724)

  미숙씨와 아침 산책을 나섰다. 엊저녁에 봐둔 예쁜 성당으로 가니 수리 중인지 비닐로 덮여있고 옆에는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지붕과 지붕 위의 둥근 조형물도 모두 나무를 깎아 만든 아담한 성당이다.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통신탑이 있는 앞산으로 오르니 길 옆 축대에 라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곳 아이들도 라바 만화를 좋아하나보다. 이 산에도 역시 야생화는 지천이고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잎은 마냥 싱그럽다.

  산을 내려와 호숫가로 갔다. 호숫가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함께 서 있는 조각상이 있는데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호숫가에는 갈매기가 날으고 잔뜩 찌푸린 하늘은 우수에 젖어있다.

  호텔로 돌아와 혹시나 헬기를 탈 수 있으려나 마냥 기다렸다. 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아 언제 개일지 모르니 다른 곳에 갈 수도 없다. 어제 계획은 헬기를 못 타면 고렐리 화산 트레킹을 하려 했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 버스로 가는 데만 4시간 이상 걸린다니 가기는 이미 틀렸다.

  달건씨 말이 오늘은 해군의 날이라 중앙 광장에서 기념행사를 한다고 한다. 미숙씨와 정원식님과 함께 레닌 동상이 서 있는 광장으로 가니 벌써 많은 해군과 육군이 모여 한창 행사가 진행 중이다. 무슨 전투 훈련을 하는지 작은 탱크와 대포가 불을 뿜고 총 쏘는 소리가 우당 탕 탕 울린다. 가까이서 들으니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하다.

  주위에 늘어선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나도 비집고 들어가 동영상을 찍는데 곁의 러시아 남자가 하우 아 유?” 하고 말을 건다. 나도 대충 대꾸를 하고 곁의 꼬마를 보니 깜찍하게 생긴 게 손자 이안이 생각이 난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니 안개 때문에 오늘 헬기는 안 뜬다고 한다. 방에서 삼각 김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1시 반에 바닷가 산책을 하러 떠났다. 가다가 킹크랩을 사고 달건씨 집에서 큰 들통을 싣고 한 시간가량 가니 검은 모래해변이 나온다.

  여기서 산책을 했는데 여기도 야생화가 깔려 온통 꽃밭이다. 사진들을 찍느라고 일어설 줄 모른다. 차 있는 쪽으로 오니 감독님은 킹크랩 세 마리를 통에 넣고 펄 펄 끓이고 있다. 미숙씨는 킹크랩을 먹으려면 돌로 깨야한다고 돌맹이를 들고 왔다. 나는 설마 깨먹는 도구도 가져 왔겠지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다. 미숙씨 말대로 아무 도구도 없다. 결국 미숙씨가 큰 돌을 밑에 놓고 작은 돌로 내려치니 돌처럼 단단한 껍질이 깨진다. 미숙씨가 깨주는 대로 널름 널름 잘도 받아먹는다. 입이 많으니 커다란 킹크랩 세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가 하도 잘 먹으니 감독님과 달건씨, 기사는 입맛도 못 봤다. 다 먹고 나니 이들이 생각나서 우리 삼각 김밥을 주었다.

  소화를 시켜야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또 바닷가를 걸었다. 풀밭에는 모기가 있어 바닷가로 가니 웬 폐선이 모래밭에 누워있다. 아마도 어디서 난파된 배가 여기까지 파도에 밀려온 듯하다. 선체는 다 없어지고 밑 부분의 철 구조물만 모래에 박혀있다. 여기에 올라가 이런 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어대며 1시간 정도 걷다가 다시 차로 돌아왔다.

  시내로 돌아와 오늘은 경도라는 일식집으로 갔다. 장어 샐러드, 생선초밥, 볶음밥, 광어 까스에 사케까지 곁들이니 웬만한 잔칫상 부럽지 않다. 이번 여행은 구경보다는 완전히 먹자판 놀자 판이다. 아무래도 2키로는 살이 쪄서 갈 것 같다.

  저녁을 먹다가 감독님이 러시아에서의 삶이 힘들었는지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흘린다. 우리가 보기에도 마음이 여려보이는데 거친 러시아 사람들을 상대하려니 애 간장이 다 타들어가나보다.

  호텔로 돌아오니 달건이 여친 러시아 여자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수산업을 하는 여자인데 집도 있고 차도 있어 호박이 덩굴째 떨어졌다고 감독님은 달건이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러시아 여자들은 정력이 세서 하루에 세 번씩 해줘야 한다고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농담을 한다.

 

 

 

 

 

 

 

 


다차 방문 ( 725)

  오늘은 양숙씨 금옥씨까지 합쳐 다섯 명이 아침 산책을 나섰다. 오늘도 날씨는 역시 한 달 굶은 시어머니 상이다. 다시 호숫가에 가니 사랑의 나무가 있다. 나무 모양으로 만든 조형물인데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렸다. 러시아 연인들도 자물쇠 채우기를 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나 보다.

  오전에 주말농장 다차를 방문했다. 주로 퇴직한 사람들이 사는 별장 같은 곳이다. 집집마다 어찌나 정원을 예쁘게 가꾸어 놓았는지 다들 넋을 잃고 들여다본다. 한 할머니는 우리를 보더니 밖으로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한다. 할머니 집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또 한 여자가 자기 집 구경을 하란다. 그 집에 들어가니 역시 오밀조밀 아름다운 정원에 작은 폭포도 만드는 중이었다. 멋진 개도 있었는데 그 개를 안고 사진들을 찍느라고 여념이 없다.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주방에 거실에 침실까지 보여준다. 실내에도 그녀의 작품이 구석구석 장식되어 있다. 이 구석 저 구석 찍고 그 집 아이들과 사진도 찍은 후 나오려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라일락 나무로 가서는 마구 꺾어 한 다발을 준다. 갑자기 부케를 받으니 황홀하기 그지없다. 러시아 사람들은 모두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차에 와서 꽃다발을 달건씨에게 주며 부인 갖다 주라고 하니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다. 차 뒤로 가져가더니 잘 모셔둔다. 칭찬은 고래도 웃게 만든다고 하지만 꽃도 모든 동물을 웃게 만드는 모양이다.

  차로 돌아와 공항 쪽으로 가다가 점심을 먹고 페트로파블롭스크 공항으로 갔다. 오늘은 모스크바에서 비행기가 들어오지 않았는지 한가하다. 감독님과 달건씨와 이별하려니 그새 정이 들었는지 가슴이 찡하다.

  비행기에 올라 기내식 한 번 먹고 나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내리니 가이드 김경열씨가 마중 나왔다. 우글라역에서 블라디보스톡 시내까지 시베리아횡단열차 탑승 체험을 한다고 하여 우글라 시내로 갔는데 마침 장날인지 노점상이 많다. 탑승 시간까지 시장구경을 하라고 해서 여기 저기 휘젓고 다니며 메론도 사먹고 산딸기도 사먹으며 돌아다니다가 한 마켓에 들어가니 눈에 익은 자작나무 보드카가 보인다. 서로 사겠다고 난리를 치니 김사장님이 매점 여자를 제치고 진열장 안으로 들어가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을 달라는 대로 다 내준다. 순식간에 매장 안의 보드카가 다 동이 났다.

  기차 시간이 되어 우글라역으로 와서 기차를 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라고 해서 티벳 라싸에서 북경까지 오는 칭짱열차를 상상했더니 이건 완전 완행열차다. 침대는커녕 자리도 꼬질대로 꼬졌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역무원에게 내가 아는 오직 한 마디 러시아말 그제 뚜알렛.” 했더니 앞을 가리키며 뭐라고 떠들어대는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고 빼곡히 앉은 러시아 사람들을 제치고 몇 칸을 가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아 밖을 보니 아무르 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가에 나온 시민들은 수영과 낚시를 즐기고 있다. 평화로운 모습을 보자 사람 사는 행복이 저런 것이지 별 게 있나 싶다.

  첫 날 묵었던 아지무트 호텔에 들어 짐을 풀고 미숙씨와 해양공원의 야경을 보러 갔다. 올해가 전승기념 70주년이고 해군의 날 기념일이라 바다에는 군함이 가득 떠서 불을 밝히고 있다. 무슨 크루즈 배가 저렇게 많이 들어왔나 했더니 군함이란다. 아이맥스 영화관 건물도 들어가 보고 바닷가로 가니 분수대가 휘황찬란하고 곳곳에 공연도 벌어진다. 버스로 만든 이동식 카페에는 젊은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다. 캄캄한 바다에는 쌍쌍의 연인들이 보트 놀이를 즐기고 해변가에서는 어린 아이를 고무줄에 달아 당겼다가 올리며 공중 묘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돈을 가져오지 않아 눈요기만 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김사장님이 낮에 우글라에서 산 감자를 쪄서 들고 나오며 호텔 옆 주차장에서 먹자고 한다. 우리는 주차장 아래 나무 숲 벤치에 앉아 감자와 자두, 메론을 배터지게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웬 이불보따리? ( 726)

  아침에 일어나 양숙씨 금옥씨까지 합쳐 다섯 명이 또 산책에 나섰다. 시내를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어제 본 예쁜 거리와 해양공원을 또 돌았다. 밤에 본 모습이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의 얼굴이라면 아침에 보는 모습은 맨 얼굴의 우중충한 모습이다. 그래도 이 구석 저 구석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또 해양공원에 가니 커피집이 보인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다섯 명이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고 호텔로 돌아왔다.

  식사 후 짐을 들고 로비로 나오니 김경열씨가 짐을 거기에 두면 버스에 실어주겠다고 한다. 간단한 짐만 들고 아르바트 거리를 보러갔다. 아르바트는 어딘가 했더니 오늘 아침에 본 예쁜 거리였다. 우리나라 대학로 같은 곳이다. 이 거리 곳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국기를 들고 해양공원으로 가고 있었다. 여기서도 해군의 날 기념식을 한다는 것이다. 어린 두 딸이 예쁜 가방을 지고 아빠 엄마 손을 잡고 춤을 추듯 걸어가는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인간 삶의 행복이 저런 거로구나 싶다.

  해군의 날 기념식 관계로 교통이 통제되어 버스가 호텔로 오지 못한다고 하여 부지런히 호텔로 돌아와 버스가 있는 곳까지 짐을 끌고 걸어갔다. 버스에 짐을 싣고 아르세니예프 향토 박물관으로 갔다. 여기는 여러 가지 동물의 박제도 있고 고대 유물도 있었다. 석기시대 유물도 있는 걸 보면 아주 옛날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나보다.

  박물관에서 나와 한국 사람들이 처음 정착해 살았다는 개척리와 1937년 이주정책으로 옮겨 가 살았다는 신 한촌을 보았다. 신 한촌 산기슭에는 신 한촌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국땅에서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고된 삶을 이어간 선조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아침에 안개가 끼어 포기하려했던 독수리 전망대에 가기로 했다. 이곳 사람들이 여기에 독수리 둥지가 있는 줄 알고 올라갔지만 독수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름은 그냥 독수리 전망대로 붙였다. 독수리 전망대에서는 블라디보스톡 항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서해대교 같은 다리도 보인다. 여기에는 키릴과 메세티우스 형제의 동상이 서 있는데 러시아 문자를 만든 사람이라 한다.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 시내 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다가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버스에 오르자 무슨 설문지를 주며 써달라고 한다. 그 동안의 여행이 만족스러웠는지 묻는 내용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앞으로 힘을 내어 더 잘하라고 높은 점수를 주었다.

  두 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들어오니 역시 우리나라가 좋다. 어머니 품에 안기듯 편안한 기분이다. 전철을 타고 사가정역에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웬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노인네가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들고 다니나? 보아하니 이불 보따리 같은데~”하며 불쌍한 눈으로 바라본다. 굳이 아니라고 하기도 뭣해서 그냥 ~”하고 대답했다. 머리를 허옇게 하고 다니니 다들 80 먹은 노인네로 알고 자리 양보도 잘 한다. 한 번만 망가지면 평생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집에 와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 컴퓨터로 옮기는데 불이 깜빡 깜빡한다. 컴퓨터로 옮겨 가는 줄 알았더니 파일이 손상되어 옮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뜬다. 아뿔사~ 다 날아갔구나~ 하며 허탈감에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그 많은 야생화 사진이며 보기 힘든 노란 개불알꽃, 아바친스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아깝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기 그지없다.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끝까지 가봐야 아는 여행이었다. 끝에 와서 이 지경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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