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5. 4. 16. 만 가지 악기 (수원시향 연주회)

아~ 네모네! 2015. 4. 17. 16:27

만 가지 악기

아 네모네 이현숙

 

  인간이 만든 악기는 참 오묘하다. 이강호의 연주를 듣다보면 첼로가 하나의 생물인 듯 착각한다. 때로는 흐느끼고 때로는 조잘조잘 속삭이는 여인의 음성을 듣는 듯하다. 도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이기에 저토록 심오하고 깊이 있고, 가슴 아린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악기는 주인에 따라 새로운 생명체로 재탄생한다. 주인의 손짓에 몸을 맡기고 마음껏 춤추며 노래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각양각색의 소리에 감탄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연주는 한화와 함께 하는 2015 교향악 축제의 일환이다. 4월 한 달 동안 무려 18개의 교향악단이 연주한다. 김대진의 지휘로 열린 이번 음악회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날에 열렸다. 레파토리도 모두 무겁고 우울한 곡이다.

  특히 마지막 곡인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미사음악으로 시종일관 슬픔에 젖어있다. 우리 인간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 내용인데 구구절절 예수님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까지 저려온다.

  예수님의 기도를 들을 때나 주기도문을 외울 때 예수님은 하나의 교집합인 듯하다. 하나님과 성령, 예수님이 하나의 집합이고, 예수님과 우리 인간이 하나의 집합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인간과 하나가 된 분이다. 그래서 그 분은 하나님도 되고 인간도 된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기도한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나 헨델의 할렐루야 등은 우리 귀에 익숙한데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처음 듣는 곡이다. 모차르트도 이런 종교음악을 작곡했다는 것이 놀랍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경쾌하고 가볍고 아름다운 곡이 많은데 이토록 무겁고 비통한 곡이 있는 줄 몰랐다.

  폰 발제그-스투파흐 백작은 죽은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으며 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완성했다. 곡 전체가 거룩하고 성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모든 아름다움과 화려함 그리고 이런 거룩함까지 다 뽑아낸 모차르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슬픔과 추함과 절망, 그리고 참담함 밖에 남지 않은 그는 결국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 곡은 4성부 합창으로 네 명의 성악가와 50여명의 합창단이 함께 노래한다. 원어로 노래하니 우리가 듣기에는 도찐 개찐 이거나 저거나 그 소리가 그 소리다. 악기 소리나 사람 소리나 다름이 없어 도무지 알 수가 없는데 내용을 번역해서 자막으로 비쳐주니 나 같은 일자무식이 감상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50여명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소리를 발한다. 인간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마다 악기 중 최고의 악기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때는 바이올린이 또 어떤 때는 첼로가 되기도 하고 시시 때때로 나팔도 되고 플루트도 된다. 클라리넷이 되었다가 바순이 되기도 하고 트럼펫이 되었다가 하프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인간의 소리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마치 만 가지 악기를 몸 안에 지닌 듯하다.

  연주를 마치고 나자 연주회장이 떠날 듯한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김대진 지휘자가 마이크를 잡더니 오늘이 세월호 참사 1주기 되는 날이니 앵콜곡 연주가 끝나면 박수를 치지 말고 조용히 퇴장해달라고 부탁한다. 앵콜곡은 모차르트의 거룩한 성채다. 작년 이맘 때 왔을 때도 앵콜곡으로 오버 더 레인보우 (OVER THE RAINBOW)를 연주하고 조용히 퇴장해 달라고 했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국민이 영원히 잊지 못할 슬픔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대진 지휘자 

  첼로 이강호

수원시립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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