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2. 6. 87040 번의 종소리

아~ 네모네! 2014. 4. 19. 17:10

87040번의 종소리

아 네모네 이현숙

 

  화장실 문을 열어놓은 채 볼 일을 본다. 남편도 외출하여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차이점은 화장실 문을 닫고 볼일을 보느냐 아니냐라고 한다. 안방 화장실에서 문을 열고 있으면 창문을 통해 용마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 좋은 화장실에 앉아 배설의 쾌감을 느끼는 순간 집 뒤의 중학교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1교시 시작종인 듯하다. 종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야할 것 같다. 32년을 길들여진 결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네가 아무리 악을 쓰고 울려봐라 난 똥 눈다.” 하면서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종소리에서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볼 일을 본다.

  32년 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종소리의 노예로 살았다. 한 마디로 땡~ 하면 들어가고 땡! 하면 나왔다. 거의 조건반사 수준이다. 하루에 6교시까지 있으니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12번 울린다. 금요일까지 총 60번이다. 내가 근무할 때는 토요일도 4교시까지 수업했으니 8번을 더하면 1주일에 68번이다. 1년에 적게 잡아도 40주는 수업하니까 2720번이 울린다. 여기에 32년을 곱하면 87040번이 된다.

  이 정도 듣고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도 꿈속에서 출석부를 들고 교실을 찾아 헤맨다. 시작종 친지 한참이 지나도록 교실을 못 찾아서 이거 아이들이 떠들고 난리를 칠 텐데 어쩌나?’ 하면서 괴로워한다. 복도를 지나 이리 가도 그 교실이 안 나타나고 저리 가도 보이지 않는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허둥지둥하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다가 꿈이 깨면 나도 모르게 휴~ 하고 한 숨이 나온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어딘가 매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돈에 매인 사람, 사랑에 매인 사람, 명예욕에 매인 사람 등 사람마다 종류는 다르지만 무엇엔가 매여서 노예로 살아간다.

  내 인생은 한 마디로 종소리에 매인 인생이었다. 이제 종소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내 무의식 속에는 아직도 종소리가 살아있다. 무의식 속에 있는 이 종소리마저 없앨 수는 없을까? 앞으로 32년이 지나면 다 지워질 지도 모른다. 아니 내 자신이 사라지는 날이 되어야 이 종소리에서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