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을 빨다
아 네모네 이현숙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토요콘서트에 갔다. 신세계와 함께 하는 예술의 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김대진의 해설이 곁들인 콘서트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김대진은 항상 최고의 관객 앞에서 연주하게 되어 기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양심이 찔린다. 사실 나는 음악에 대해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다.
오늘의 연주곡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Eb장조와 104번 런던 교향곡이다. 올해는 여러 작곡가들의 최후 작품을 연주한다고 한다. 트럼펫은 서지훈씨가 연주했는데 힘차고 맑은 소리가 좋다. 특히 3악장의 주제는 우리가 자랄 때 많이 보던 장학퀴즈의 시그널 뮤직이라 한결 친근함을 느낀다.
음악을 듣다보면 영혼의 심연까지 내려가는 듯도 하고 촉촉한 봄비를 맞는 듯도 하다. 이 봄비에 내 속에 떠돌던 미세 먼지와 황사가 일시에 씻겨 나가는 듯하다. 까칠하고 메말랐던 내 심령이 촉촉이 젖어들어 마냥 부드럽고 너그러워진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동 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다. 하이든은 77세의 삶을 누렸지만 모차르트는 35세에 요절했다. 당시 음악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귀족들이 요구하는 대로 작곡해야했다. 하이든은 성격이 원만하여 그들이 해달라는 대로 작곡해 주었고 한 후작의 후원을 힘입어 유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작곡했다. 자신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대로 토해냈다. 이런 그를 후원해주는 귀족도 없었고 궁중의 악장 자리도 박차고 나왔다. 그는 한 마디로 문제아이고 왕따였다. 그래서 생활도 엉망이고 요절할 수밖에 없었는가보다.
둘 중 누구의 삶이 바람직한 것일까? 젊어서는 모차르트의 삶이 보람 있어 보였다. 자신을 다 바치더라도 위대한 걸작품을 남기는 게 더 좋아보였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그냥 편안하게 하이든처럼 살다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열정과 기력이 쇠한 탓이다.
런던 교향곡은 하이든이 말년에 런던에 와서 작곡한 것이다. 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전의 교향곡들은 3악장으로 되어있었는데 하이든은 4악장으로 구성했다. 그 후 많은 작곡가들이 이 형식을 따랐다.
그는 연주 기법에도 변화를 주었는데 보통 4분의 3박자는 강 약 약, 강 약 약으로 연주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음에 악센트를 주었다. 즉 약 약 강, 약 약 강으로 표현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게 했다.
또 페달 포인트 기법을 썼는데 고음의 악기들이 어떤 주제를 연주하는 동안 저음의 악기들은 계속 한 음 만을 내는 것이다. 즉 고음이 어떤 변화를 주는 동안 저음은 변함없는 음으로 받쳐주면서 안정감을 준다.
김대진은 이번 연주를 통해 하이든에게 푹 빠져서 중독되었다고 실토한다. 자기가 작곡했다면 고음과 저음에 모두 변화를 주어 이렇게 했을 거라고 실제로 연주하며 비교시켜준다. 스스럼없는 그의 태도가 관객을 편안하게 해준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지휘하는 김대진과 넋이 나간 듯 연주하는 단원들을 보면 그들의 기가 그대로 나에게 흡수되는 느낌이다. 마치 내가 그들의 심혈을 아니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듯하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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