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꼭지가 무슨 죄?
아 네모네 이현숙
서천에 있는 희리산에 갔다. 정규 등산로를 벗어나 계곡길로 내려왔다. 망개덩굴과 찔레 등 온갖 가시덤불이 앞길을 가로 막는다. 앞 사람이 지나갈 때 잔뜩 휘어진 덩굴이 원위치 하면서 뒷사람을 때린다. 얼굴도 할퀴고 가슴도 때린다.
하필 덩굴이 튕겨지면서 가시가 내 젖꼭지를 찌른다. 눈물이 찔끔 난다. 이게 다 거시기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 조신하게 잘 차려입고 다녔으면 좋으련만.
30대 때 가슴에 혹이 생겼다. 어느 날 가슴을 만지는데 멍울이 손에 잡혔다. 순간 유방암인가 겁이 더럭 났다. 병원에 가니 수술을 하고 조직검사를 하자고 한다. 혹을 떼어내 조직검사를 하는데 결과는 일주일이 있어야 나온다고 했다.
일주일을 기다리는데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이거 내가 여기서 죽으면 초등학생인 아들이 어떻게 상주 노릇을 하나? 당장 누구를 데려다 놓아야하나 동생 미경이라도 데려다 놓을까? 피를 말리는 일주일이 지나고 병원에 가니 양성 종양이라 괜찮다고 한다.
그 후 뉴스에서 브레이지어를 하면 유방암 발생률이 높다는 소리를 언뜻 들었다. 그 때부터 노브라로 살았다. 얇은 옷을 입을 때는 젖꼭지가 드러나 신경이 쓰인다. 이걸 안 보이게 하려고 알록달록 헷갈리는 옷을 입거나 브라런닝 같이 앞가슴이 두꺼운 내복을 입는다.
그러다 보니 은근히 화가 치민다. 이거 내가 만들어 붙인 것도 아닌데 젖꼭지가 무슨 죄인가 싶다. 따지고 보면 젖꼭지는 후손에게 젖을 먹이라고 하늘이 만들어준 축복인데 말이다.
어떤 동물이고 젖꼭지 가리는 동물은 없다. 그냥 당당하게 내놓고 다니며 젖 먹인다. 유독 인간만이 생식기나 젖가슴을 가리고 싸매고 숨긴다. 인간도 에덴동산에서는 벌거벗고 살았다는데 정말 선악과를 따 먹어서 수치심이 생긴 것일까?
어차피 할머닌데 이제 얼굴에 철판 깔고 막가파로 살아볼까? 이래서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하나보다. 이유인즉 눈에 뵈는 게 없어서란다. 정말 날이 갈수록 체면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행동한다. 이래서 젊은 사람들이 늙은이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좀 더 조심하며 젊잖게 살아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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