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10. 14. 저 여자좀 봐라

아~ 네모네! 2013. 10. 28. 14:28

저 여자좀 봐라.

 

아 네모네 이현숙

 

  “! 저 여자좀 봐라. 저런 신 신고도 갔다 오자녀~.”

  서울에서 결혼식이 끝나고 동네 사람들과도 잔치를 해야 한다는 시어머니 말을 따라 대전으로 내려갔다. 허름한 판잣집에 앉아 동네 어른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으며 쥐 죽은 듯 앉아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가시자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속리산으로 갔다. 딱히 신혼여행이랄 것도 없이 그냥 하루 밤 쉬러 간 것이다.

  사실 신혼여행 갈 돈도 없고 예약한 한 곳도 없으니 무턱대고 간 것이다. 법주사 아래 속리산 호텔인가 뭔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호텔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딱히 할 일도 없고 아침부터 서울로 올라가기도 뭣해서 문장대나 가자고 했다. 계획에도 없는 산행이니 등산복은커녕 운동화도 없다. 그냥 투피스 정장에 뾰족구두를 신고 문장대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밑에서 어떤 남녀가 올라온다. 여자가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는지 남자가 나를 보고 한 마디 한다.

  저 여자좀 보라는 것이다. 투피스 치마를 입고 뾰족구두 신고 내려오는 내가 우습기도 했겠지만 저런 여자도 갔다 오는데 어서 가자는 것이다. 그 때만해도 아웃도어 상품이 별로 없어서 등산 갈 때 요란하게 차려입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기본으로 운동화에 청바지 정도는 입었다.

  지금 같았으면 그런 차림으로 산행하는 여자는 약간 맛이 간 여자로 취급할 것이다. 요새는 동네 뒷동산에 올라가도 복장만은 에베레스트 원정대 차림이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확실하다. 세계 유명메이커가 안 들어온 것이 없을 정도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산은 나에게 힐링 공간이다. 속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 때, 세상 살 맛이 안 나고 곧장 땅속으로 꺼져 버리고 싶을 때 산에 오른다. 산에 올라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을 바라보면 왜 저속에서 그토록 아웅다웅 울며불며 살았나 싶다. 살다보면 잠깐인 것을 왜 그리도 조급히 속을 태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정상의 벤치에 홀로 누워 뭉쳤다 흩어졌다하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 인생도 한 조각 구름이 아닌가 싶다.

  잠시 뭉쳐져서 인간이 되고 흩어지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왜 그리도 안달복달 살았을까? 이 따뜻한 햇볕을 쬘 수 있는 것도 한 순간이고 곧 깜깜하고 어둡고 축축한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나도 모르게 다 사라지고 온 몸이 홀가분하게 되어 산을 내려온다. 산은 나의 영원한 동반자요, 애인이요, 치료사다. 언제 어디서나 생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