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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100일간의 세계일주 23

by 아~ 네모네! 2025. 2. 22.

  2월 21일 항해 1 (이스터섬에서 타이티섬으로)


어제부터 왼쪽 눈이 약간 아프고 간질 간질하다. 선내에서 안과와 치과 치료는 못 한다고 했으니 진료실에 가 봤자 소용없다. 집에서 가져온 안약이나 넣어야겠다.서울엔 길바닥에 널린 게 병원인데 여기선 수천 명에  달랑 의사 하나 뿐이니 그게 가장 불편하다. 게다가 진료실에서 보내온 안내문을 보면
넘어져 골절> 수술> 귀국,
수분 부족으로 탈수> 체력저하> 귀국,
약 복용 까 먹음> 지병 악화> 귀국이라고 공갈 협박이 심하니 항상 불안에 떨며 지낸다. 이억만리 타향에서 쫓겨나면 그 무거운 짐을 끌고 어떻게 집에까지 가느냐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금형씨도 입이 부르텄다고 약을 찾고 있다. 어제 섬 한 바퀴 도는 거 본다고 갑판에서 몇 시간 서 있더니 힘들었나 보다. 나도 침을 삼킬 때마다 귀에서 찌그덕 찌그덕 소리가 난다. 감기와 비염으로 자꾸 코를 풀었더니 귀에 자극이 심한가 보다. 하긴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100일간 여행한다는 것이 무리다.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는 내가 문제다.
  오늘도 요가가 없으니 느긋하게 일어나 14층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 도중 흰구름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조신하고 상냥하게 잘도 받는다. 다른 때는 전화하러 밖으로 나가더니 오늘은 식탁에서 그냥 받는다. 내연남도 아닌데 앞으로도 그냥 받으라고 했더니 웃으며 바깥이 더 잘 들려서 나갔단다.
  자양중학교 근무할 때 선생님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남편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에게 아들하고 통화했느냐고 한다. 내 말투가 하도 막가파여서 그랬나 보다. 내가 너무 마구 대해서 빨리 도망갔는 지도 모른다.
  식사 후 갑판을 돌았다. 배 후미에서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보인다. 배가 서쪽으로 움직이니 뒤에서 해가 뜬다. 물 위에서 떠오르는 해는 바다 위에 긴 빛의 길을 만든다. 이 길을 따라가면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수면 위에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보인다. 구름의 모양은 상승기류의 세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상승기류가 강하면 위로 치솟아 소나기 구름이 생긴다. 낮에 상승기류가 강할 때는 뭉게구름이 생겼다가 저녁이 되어 상승 기류가 약해지면 푹 주저앉아 평평한 구름이 된다. 참 신기하다.


  걷기를 마치고 방에 오니 방 청소가 끝났다. 내 잠옷이 침대위에 얌전히 개켜져 있다. 내 사전에 이런 일은 없는데 내 잠옷이 감동 먹었을 것 같다.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더니 내 주인이 죽을 때가 다 됐나 보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매일 뚤뚤 말아서 옷장에 쳐넣는데 오늘 깜빡하고 나갔나 보다.


   오전에 할 일이 없으니 방에 와 빈둥거리며 쉬었다. 점심 식사 후 영어교실 초급반에 갔다. 오늘은 used to에 대해 배웠다. 예전에 다 배운 것이지만 다시 배우니 더 좋다. 동시통역사 규현씨가 보충 설명까지 해주니 금상첨화다.


    흰구름과 영어교실을 마치고 나오다가 8층 카페에 들렀다. 어제 야채 피자가 나와서 오늘은 해산물 피자가 나오나 하고 가 봤더니 버섯 피자다. 해산물 피자는 언제 나오냐고 하니 3월 3일이 되야 나온단다. 이스터섬에서 해산물을 싣지 못했나 보다. 하긴 배를 부두에 대지도 못했으니 아무 것도 싣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3월 4일이 타이티 입항인데 어디서 해산물을 실을지 모르겠다.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와 어제 남겨둔 콜라와 먹었다.
  먹고 나와 7층 갑판을 돌았다. 어제까지는 구명정을 내리느라 갑판의 일부 구간을 막았는데 오늘은 전체를 돌 수 있으니 속이 시원하다. 섬 쪼가리 하나도, 새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물과 구름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념무상으로 걸으니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가끔은 복잡한 육지를 떠나 이렇게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7층 갑판에서 인터넷을 하려니 와이파이가 연결 됐다고 하는데도 안 된다. 안으로 들어가니 가현씨와 규현씨가 있다. 가현씨에게 얘기하니 이건 5층 가서 물어봐야 한다며 데리고 내려간다. 가서 리셉션 직원에게 얘기하니 어디다 전화를 걸어서 해결해 준다. 내려간 김에 벽에 걸린 피스보트 사진을 보았다. 피스보트에서 참 많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오로라도 보러 가나 보다. 이거 약간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100일씩 여행하는 건 엄두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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