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항해 1 (이스터섬에서 타이티섬으로)
어제부터 왼쪽 눈이 약간 아프고 간질 간질하다. 선내에서 안과와 치과 치료는 못 한다고 했으니 진료실에 가 봤자 소용없다. 집에서 가져온 안약이나 넣어야겠다.서울엔 길바닥에 널린 게 병원인데 여기선 수천 명에 달랑 의사 하나 뿐이니 그게 가장 불편하다. 게다가 진료실에서 보내온 안내문을 보면
넘어져 골절> 수술> 귀국,
수분 부족으로 탈수> 체력저하> 귀국,
약 복용 까 먹음> 지병 악화> 귀국이라고 공갈 협박이 심하니 항상 불안에 떨며 지낸다. 이억만리 타향에서 쫓겨나면 그 무거운 짐을 끌고 어떻게 집에까지 가느냐 말이다. 선내 의사는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쫓는 사람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금형씨도 입이 부르텄다고 약을 찾고 있다. 어제 섬 한 바퀴 도는 거 본다고 갑판에서 몇 시간 서 있더니 힘들었나 보다. 나도 침을 삼킬 때마다 귀에서 찌그덕 찌그덕 소리가 난다. 감기와 비염으로 자꾸 코를 풀었더니 귀에 자극이 심한가 보다. 하긴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100일간 여행한다는 것이 무리다.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는 내가 문제다.
오늘도 요가가 없으니 느긋하게 일어나 14층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 도중 흰구름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조신하고 상냥하게 잘도 받는다. 다른 때는 전화하러 밖으로 나가더니 오늘은 식탁에서 그냥 받는다. 내연남도 아닌데 앞으로도 그냥 받으라고 했더니 웃으며 바깥이 더 잘 들려서 나갔단다.
자양중학교 근무할 때 선생님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남편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에게 아들하고 통화했느냐고 한다. 내 말투가 하도 막가파여서 그랬나 보다. 내가 너무 마구 대해서 빨리 도망갔는 지도 모른다.
식사 후 갑판을 돌았다. 배 후미에서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보인다. 배가 서쪽으로 움직이니 뒤에서 해가 뜬다. 물 위에서 떠오르는 해는 바다 위에 긴 빛의 길을 만든다. 이 길을 따라가면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수면 위에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보인다. 구름의 모양은 상승기류의 세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상승기류가 강하면 위로 치솟아 소나기 구름이 생긴다. 낮에 상승기류가 강할 때는 뭉게구름이 생겼다가 저녁이 되어 상승 기류가 약해지면 푹 주저앉아 평평한 구름이 된다. 참 신기하다.

걷기를 마치고 방에 오니 방 청소가 끝났다. 내 잠옷이 침대위에 얌전히 개켜져 있다. 내 사전에 이런 일은 없는데 내 잠옷이 감동 먹었을 것 같다.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더니 내 주인이 죽을 때가 다 됐나 보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매일 뚤뚤 말아서 옷장에 쳐넣는데 오늘 깜빡하고 나갔나 보다.

오전에 할 일이 없으니 방에 와 빈둥거리며 쉬었다. 점심 식사 후 영어교실 초급반에 갔다. 오늘은 used to에 대해 배웠다. 예전에 다 배운 것이지만 다시 배우니 더 좋다. 동시통역사 규현씨가 보충 설명까지 해주니 금상첨화다.

흰구름과 영어교실을 마치고 나오다가 8층 카페에 들렀다. 어제 야채 피자가 나와서 오늘은 해산물 피자가 나오나 하고 가 봤더니 버섯 피자다. 해산물 피자는 언제 나오냐고 하니 3월 3일이 되야 나온단다. 이스터섬에서 해산물을 싣지 못했나 보다. 하긴 배를 부두에 대지도 못했으니 아무 것도 싣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3월 4일이 타이티 입항인데 어디서 해산물을 실을지 모르겠다.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와 어제 남겨둔 콜라와 먹었다.
먹고 나와 7층 갑판을 돌았다. 어제까지는 구명정을 내리느라 갑판의 일부 구간을 막았는데 오늘은 전체를 돌 수 있으니 속이 시원하다. 섬 쪼가리 하나도, 새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물과 구름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념무상으로 걸으니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가끔은 복잡한 육지를 떠나 이렇게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7층 갑판에서 인터넷을 하려니 와이파이가 연결 됐다고 하는데도 안 된다. 안으로 들어가니 가현씨와 규현씨가 있다. 가현씨에게 얘기하니 이건 5층 가서 물어봐야 한다며 데리고 내려간다. 가서 리셉션 직원에게 얘기하니 어디다 전화를 걸어서 해결해 준다. 내려간 김에 벽에 걸린 피스보트 사진을 보았다. 피스보트에서 참 많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오로라도 보러 가나 보다. 이거 약간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100일씩 여행하는 건 엄두가 안 난다.

2월 22일 항해 2 (이스터섬에서 타이티섬으로)
오늘 아침에는 어쩌다 젖소에 대한 말이 나왔다. 내가 젖소는 이름이 젖소니까 무조건 젖이 나오는 줄 알았다니까 금형씨가 웃음을 터뜨리여 처녀가 젖 나오는 거 봤냐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지 모르겠다. 흰구름도 새끼를 낳아야 젖이 나오는 거지 어떻게 젖이 나오겠냐고 하며 요새는 모두 인공 수정을 하는데 좋은 수컷의 정액은 엄청 비싸고 수출도 한다는 것이다. 한 번 해보지도 못 하고 정액만 뽑힌다면서 인간이 참 못 됐다고 한다. 인간이 이렇게 자연 현상에 개입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유전자 조작까지 하고 있으니 기상천외한 생물이 나타나 지구를 지배할 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좋은 유전자를 얻기 위해 인공 수정을 할 수 있다. 인간이 조작해서 만든 인간은 또 다른 취약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요가를 마치고 갑판으로 나가니 바람이 엄청 세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니 높이 있는 구름은 제 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아래의 검은 구름은 왼쪽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공기의 아래 부분에서만 오른쪽에서 바람이 부나 보다. 뵈는 게 구름 밖에 없으니 별 생각을 다 한다.

사누이 유스케의 '세계 유산 여행 북유럽편'을 들으러 갔다. 다음 항해에 대한 설명회인 듯하다. 다시 크루즈 여행할 맘은 없지만 세계 유산에 대해 알고 싶어서 갔다. 이스터섬에는 자기를 닮은 모아이가 있다고 옆 얼굴을 보여준다.

1. 스웨덴
스웨덴은 왕국이며 화폐는 크로나를 쓴다. 이케아 가구와 볼보 승용차, H&M은 스웨덴 상표다. 매일 휴식 시간을 갖는데 다과를 나누며 교제한다.

알레만 스레타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단 자연을 파괴시키면 안 된다.

드로트닝홀름 궁전도 세계문화유산이다. 라곱은 딱 적당한이란 뜻인데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말한다. 그들은 느긋함을 좋아한다. 로벤섬에 있고 220개의 방이 있다. 북유럽의 베르사유라고 한다.

크립센 궁전은 왕비의 작은 성이란 뜻이고 여름 궁전이다. 그 안에 중국식 방도 있다.

건축과 자연의 조화를 이룬 공동묘지도 있는데 북유럽의 생사관을 나타낸다.1913년 조성되었고 예배당과 화장터가 있다. 조상은 숲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여 숲 속에 만들었다.

칼스크로나 군항은 유럽 최초의 근대적 군항이다.
비스뷔는 바이킹의 근거지이며 한자동맹의 도시다. 북유럽에 만든 독일식 도시인데
비스비라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을의 모델이 된 곳이다.
라포니안 지역은 복합유산이다. 4만명의 사미족이 살며 자연이 잘 보존 되었다. 그들은 금요일마다 타코스를 먹는다.
2. 덴마크
인구는 581만명이고 화폐는 덴마크 크로나를 쓴다. 티볼리공원은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로스킬레대성당은 가장 오래된 성당인데 역대 왕들이 묻혀있다.

크론보르성은 10년간 지어졌으며 르네상스 양식이다. 햄릿의 배경이 된 곳이다..

엘링의 고분은 덴마크가 탄생한 땅인데 게르만어가 새겨진 비석도 있다. 그린란드의 빙하도 세계 자연유산이다. 매년 40제곱 킬로미터 씩 떨어져나가고 있다. 덴마크는 양돈 산업이 가장 활발하다.
3. 핀란드
유로를 사용하며 사우나가 유명하다. 사우나는 핀란드 말이다.

세계 최대의 IT산업국이다. 페테예배시 성당은 대화재로 사라진 후 복원했다. 목조교회로 나무조각과 나무가루로 지었다.
인구는 551만명인데 사우나는 300만 개다.
4. 노르웨이
수도는 오슬로이고 연어로 유명하다. 인구는 533만 명이다.스키와 클립도 유명하다. 스타브 힐케는 목조교회인데 스타브는 수직, 힐케는 교회라는 뜻이다. 눈이 많아서 지붕이 수직에 가깝다.

노르웨이 최북단 알타에 암각화가 있다. 주로 동물이 그려져 있다.

브뤼겐은 1950년에 재건 되었으며 피요르로 유명하다. 피요르는 노르웨이어다. 현지인들은 피요르가 신의 말을 전해준다고 믿는다.

플롬 열차도 유명하다.

일본어 교실에서는 24일 지구 평화의 날을 맞아 일본 사람들과 이현철의 슈퍼스타를 부른다고 연습을 했다.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사람들과 피자를 먹었다. 요새 매일 피자 먹는다. 좀 살아났나 보다.
저녁식사 후 7층 갑판을 돌았다. 오랜만에 퉁소 소리가 들린다. 그동안 실내에서 연습했는지 소리가 더 크고 맑아진 느낌이다. 악기 하나쯤 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아무 악기도 다루지 못 하는데다 노래도 못 하니 어디 가서 남 앞에 나설 수가 없다.

2월 23일 항해 3 (이스터섬에서 타이티섬으로)
북쪽으로 많이 올라왔는지 요새는 해가 늦게 뜬다. 아침밥을 먹으러 올라가면 캄캄하다. 밥 한 술 떠먹고 눈을 들 때마다 밝아지는 게 신기하다. 해가 수면 아래서 그토록 빨리 떠오르고 있나 보다.
오늘은 요가에서 앞박 골절을 배웠다. 척추의 앞부분이 골절 되는 것인데 이쪽에 신경이 없어서 본인도 모르게 골절 되는 경우도 있단다. 나도 예전에 고속도로에서 딴 차가 박았을 때 에어백이 터지며 가슴을 쳤는데 그때 부러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 후 숨 쉬기도 힘들었다. 사진에서 빨간 부분이 앞박이다. 앞박 골절이 되면 자세가 나빠지니 배 근육을 단련해야 한단다. 요가 선생님은 그림도 잘 그린다. 춤도 잘 추는데 도대체 못 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요가를 마치고 갑판으로 나가니 오늘도 흰구름이 둥실둥실 떴다. 흰구름을 보면 솜사탕 생각이 난다. 따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그 위에 올라가 눕고 싶기도 하다. 엄청 폭신할 것 같다. 실제로 누우면 바다로 추락하겠지만 말이다.

금형씨와 흰구름은 매일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벌써 10여 권씩 읽었다. 게으른 나는 눈 아프다는 핑게로 책도 안 보고 손가락만 놀린다. 머리에 들어가는 건 없고 나오는 것 밖에 없으니 점점 골빈당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른 점심을 먹고 '여행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를 들으러 갔다. 재팬그레이스 직원이었던 토키와 미오코의 깅연이다.
비즈터라운지로 가는데 벽에 붙은 해도에 현 위치를 그려 넣는 하사마가 보인다. 삼각자 두 개를 대고 정성껏 그리고 있다. 옆에 붙은 종이에서 위도와 경도를 보고 현 위치를 찍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많은 것을 누린다.

토키와 미오코라고 해서 두 명인 줄 알았더니 성과 이름인가 보다. 재팬그레이스 직원으로 20년간 전 세계를 누비다가 지금은 재해지원센터(PBV)에서 일하고 있다. 세계일주를 50회 나 했단다.

그녀는 기항지에 선발대로 미리 가서 준비하는 역할을 했다. 자기는 일본 시골의 외딴 곳에서 출생했다. 나가노현에 있지만 이곳은 신간센 정류장이 없다. 초등학교 때 원폭 피해에 대한 사진전을 보러 갔다. 제단에 그림자만 남고 실체가 없는 사진을 보고 놀랐다. 왜 전쟁이 일어날까 생각했다. 언어가 안 통해서 라고 생각하고 통역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러시아어와 스페인어 중 무엇을 할까 하다가 스페인 갔던 사람이 스페인이 참 좋다고 해서 스페인어를 하게 됐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는데 한 교수가 40명을 가르쳤고 1주일에 두 번 정도만 해서 별로 잘 하지는 못 했다. 그 때는 부모 돈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자기는 로터리 클럽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가게 됐다.
대학원에서는 쿠바 선생님에게 배웠다. 그의 세미나를 듣고 쿠바에 관심이 많아졌다.
대학교 때 노벨평화상을 받은 리고베르타 멘추씨를 보고 관심이 많아졌다. 리고베르타는 과테말라 사람이다. 그녀의 포스터를 자신의 방에도 붙였다.

그 다음 칠레 산티아고로 유학 갔다. 칠레에서 스페인어를 1년간 배웠다. 그 후 칠레에 있는 일본 상공회의소에서 일하게 됐다. 여기서 피스보트를 알게 되어 동시통역사로 일하게 됐다. 남미 생활을 6년간 했다. 나가노현에서 가정생활을 하다가 피스보트 생각이 났다. 동시통역사로 무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47번째 항차에 타게 됐고 20년간 일했다. 아래 그림은 친구가 그 때 그려준 얼굴이다.

나미비아에서 리우로 갈 때 감기에 걸렸다. 확성기가 없어 큰 소리를 질렀더니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마스크를 하고 말을 못 한다고 하며 글로 통역하여 다른 CC에게 보여줬다. 그 후 넋 나간 것처럼 보냈다.
48회 크루즈에 다시 도전했다. 스페인 라스팔마스에서 합류했다. 이 때는 제대로 통역했다. 51회차 쿠바로 갈 때 다시 도전했다. 나고야 살 때였는데 쿠바에서 살사도 했다. 이 때 재팬그레이스에 정식으로 입사하게 됐다. 13년간 기항지부에서 일하게 됐다.
기항지에서 아오자이를 입으면 사람들이 자기를 베트남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면서 일본어 잘 한다고 했다. 기항지부에 있으면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기항지 중 기억에 남는 곳은 카나리카섬 등 외딴 섬이다.
자기가 간 곳이 기항지로 결정되면 보람을 느낀다. 니카라과에 쓰레기 수거차도 보냈다. 현지에서 트럭을 내릴 곳에 긴 손잡이가 있어 이걸 제거하고 내렸다. 제이카는 피스보트에서 가져간 이 차를 자랑스러워 했다.
기항지 중 예멘도 인상 깊었다. 그곳 남성들은 반월형 칼을 차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하던 가이드가 있었는데 그는 쿠바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고 했다.
니고베르타는 과테말라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자신의 우상이었다. 그를 피스보트에 초청도 했다. 넓은 정원이 있는 그의 집에 초대하여 마야족 의식도 했다.

2008년 피폭 피해자 100명을 피스보트에 초청하여 증언을 들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에도 방문했다. 자신도 통역하며 그 증언을 들었다.
세상은 넓지만 사회는 좁다. 곳곳에서 많은 사람과 만난다. 사람들과의 연결이 그 후의 삶으로 이어진다.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은 대체로 실행했다. '야쿠자에게 잡힌 여자들'이란 책을 일본어로 번역도 했다. 캐리어 컨설팅 자격증도 땄고 인생 상담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재팬그레이스를 떠난 후 일자리가 없어 매일 술을 먹었더니 살이 빠졌다. 그 후 나가노현으로 이사 가려했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다. 도쿄에 남아 인재 파견 회사에 합격했지만 1년 동안 유예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 동안 새로운 많은 일을 했다. 주택 전시회 영업, 백신 접종 장소 안내, 도쿄 올림픽,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일했다. 가정 폭력,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일도 했다.
1년 뒤 '태양의 서커스' 공연 운영 본부에서 일했다. 출연자 66명과 만나 일을 했다. 정치적 일은 말하지 않고 가족 같이 지냈다. 1년 반 정도 일했다.
작년 4월부터 재해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됐다. 마이너스 상태에서 원래 상태로 돌리는 것이 이 센터의 목표다. 피해 지역에 방문하며 배운 것도 많았다. 재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생활 터전이 사라진다. PBV의 이념은 사람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로 강연을 끝냈다.
강연 후 7층 갑판을 걸었다. 매일 이 시간이면 갑판 의자에 나와 담소를 나누는 남녀가 보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엔돌핀이 팍팍 나올 것이다. 강아지 새끼 한 마리 키우지 않는 나는 참 메마른 인간이다. 사랑의 불구자라는 생각도 든다. 하긴 로맨스 그레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더라만 나는 그레이는 커녕 로맨스 핑크도 안 해본 것 같다. 남편이 키우던 화분도 귀찮다고 며느리에게 모두 줘버렸다. 우리 집에는 생물이라곤 나 하나 뿐이다.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는 나는 사랑의 장애인이 확실하다. 불륜이건 정당한 연애건 축복할 일이다. 못하는 내가 병신이다. 70대에 애인이 있으면 신의 딸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인간의 딸도 아니다.
저녁식사 후 7층 갑판 돌기를 마치고 10층 앞 갑판으로 나가니 해가 넘어가고 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있는데도 수면 윗부분에는 구름이 없다. 해가 물 속으로 퐁당 빠지는 걸 제대로 봤다.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길 기원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2월 24일 항해 4 (이스터섬에서 타이티섬으로)
이제 19일 남았다. 날짜변경선을 넘는 순간 하루가 없어지니 요코하마에 도착하는 날까지 19일만 배에 있으면 된다. 세월이 알아서 가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세월의 강을 헤엄쳐 나가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세월이 알아서 가 준다. 정말 다행이다. 세월이 약이란 말도 있다. 모든 어려운 일도 세월이 지나가면 해결된다. 세월에게 감사해야겠다.
요가를 마치고 7층 갑판을 걸었다. 오늘도 구름을 그리는 여자가 있다. 그림 그리는 동안은 세상 근심 다 잊을 것 같다. 실제보다 그림이 더 예쁘다. 그리는 사람의 마음까지 녹아 들어가기 때문인가 보다.
다음은 사누이 유스케의 '세계의 다크 투어리즘'을 들으러 갔다. 인류의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따라가는 여행이다. 이시카와 히메카도 함께 한다. 히메카는 오늘 처음 강연이다.

오늘은 평화와 지구의 날이다. 극장 입구에 스탬프가 있다. 여기 저기에 있으니 찍어보라고 한다.
다크 투어리즘은 역사적인 재해 지역, 피해 지역, 전쟁터를 방문하는 것이다. 히메카의 할머니는 전쟁 후 태어나셨는데 전쟁에 관해 많이 얘기해 주셨다. 대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의대생이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우는 이야기다. 자기는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직접 눈으로 본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 때 피스보토를 알게 됐다. 그 후 캄보디아 킬링 필드에 가게 됐다.

유스케는 세계유산에 관심이 많았는데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받으며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게 됐다.
킬링 필드는 영화에도 나온 곳이다. 프놈펜에서 폴포트 정권하에 100만 명이 죽었다. 그 때 인구의 4분의 1이다. 3년 8개월 동안 만여 명이 고문으로 죽었다. 그곳의 전시물을 보면서 말을 잃었다. 갓난 아기를 나무에 묶어 때려 죽였는데 그 나무도 있다.

유스케도 작년에 가서 고문시설을 봤다. 밖으로 탈출할 수 없게 되어있다. 시엠립의 킬링 필드도 갔다. 지뢰밭에 들어가 지뢰 제거도 했다.
한국에는 서대문 형무소가 있다. 여기 5000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하얼빈에는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려고 만든 731부대 유적지가 있다. 3000명의 마루타가 생체 실험으로 죽었다.

세계유산 중 유일하게 소속 국가가 없는 곳이 예루살렘 시가지와 성곽이다. 유대인의 시오니즘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했다. 예루살렘은 1967년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은 지금도 들어가기 힘들다. 폐선을 해체하여 재활용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계곡에는 다양한 미술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에게 약탈 당했고 탈레반이 불상을 파괴했다.
오키나와 야부치라가마는 자연 동굴이다. 방공호로 쓰였는데 깊은 동굴이란 뜻이다. 그 후 병원으로 쓰여 군인을 치료했다. 하지만 철수할 때 움직일 수 없는 150명에게 빵과 청산가리만 두고 갔다. 여기는 가이드와 함께 들어갈 수 있다.
히로시마의 오쿠노시마는 군사적으로 이용된 곳이다. 1928년까지 무기를 만들었다. 여기서 독가스도 만들었다. 그 후 지도에서도 지웠고 숨겼다. 여기서 일한 많은 사림들이 죽어 갔다.
아오모리의 핫코다산에서는 1902년 일본군이 폭설로 조난 되어 193명이 죽었다. 세계최대 산악사고다. 영하 20도에서 혹한으로 죽었다. 이 산은 겨울 설경이 멋지다.

1919년 체코 사람이 설계한 히로시마 평화 기념비는 윈폭 돔이라고도 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반경 500km 안에 있던 사람은 즉사했다. 원폭 돔은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미국은 이 때 반대했다. 하지만 전쟁의 비참함을 남겨두자고 했다.

세네갈 출신 마티르 시의 고향 고레섬도 문화유산이다. 노예를 팔던 곳이다. 여기서 2000만명의 노예가 팔려갔다. 그들은 노예의 집에 수용 됐다. 노예로 팔려면 체중이 60kg 이상이어야 했다. 그래서 강제로 먹였다. 여자가 백인 아이를 임신하면 노예에서 해방시켰다.

모잠비크섬에는 요새가 있다. 동아프리카 노예를 팔던 곳이다.
1948년부터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다. 만델라도 18년 간 여기에 수용됐다. 선내 교도소에 있었는데 영하 4°C에도 반팔과 맨발로 살았다. 남아공의 로벤섬은 케이프타운 앞에 있다.
모리셔스의 르몬산도 노예섬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예들도 있었다.
호주의 11곳에 만든 교도소에는 16만 6천명의 영국 죄수가 수용 됐다.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는 미국이 핵 실험을 한 곳이다.
미국의 그라운드 제로는 2011년 911사태 이후 세워졌다. 여기에 911 기념관이 있다.
쿠바는 주요 설탕 생산국이다. 흑인 노예들이 여기서 일했다. 많은 선주민은 질병으로 죽었다.
콜롬비아는 스페인에 정복되어 금, 향신료 등을 약탈 당했다. 카르테헤나 항구의 요새도 노예들이 만들었다. 팔레케는 흑인 공동체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유대인 수용소다. 80년이 지나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히틀러가 선택한 것은 우리였다. 그게 누구든지 될 수 있다. 그런 사회를 선택한 것은 우리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처형된 유대인들의 머리카락, 안경, 구두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때 유대인을 구한 쉰들러의 공장은 박물관이 되었다.

리투아니아에도 일본인 쉰들러가 있었다. 그 당시 일본 영사가 많은 사람을 구했다.
네델란드의 안네 프랑크 집은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사이에는 세르비아 난민을 수용했던 유명한 다리가 있다.
크로아티아 드브르브니크는 일본 만화 영화의 배경이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파괴됐다가 3년간 복원했다.
헝가리 공포의 집에서는 5000명의 유대인이 총살 됐고 그 시체는 다뉴브강에 버려졌다. 비밀경찰이 사용했던 집도 있다.
체코에는 공산주의 박물관도 있다. 1989년 공산당이 붕괴되었다.
영국에는 제국 전쟁 박물관도 있다. 역사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프랑스에도 나치에게 파괴된 마을이 있다. 그곳을 방문해서 역사를 배울 수 있다.
강연을 듣다 보니 이 지구가 온통 상처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동물들은 소규모 싸움은 할지언정 이렇게 까지 지구를 파괴 시키지는 않는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가장 미련한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제 도끼로 제 발등을 찍고 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갑판을 걸었다. 매일 이 시간이면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가 있다. 배가 남산만 하다. 우리 아들 배를 보는 것 같다. 좀 걸었으면 좋을 텐데 가만히 앉아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안타깝다. 주제 넘게 내가 나서서 걸으라고 할 수도 없으니 묵묵히 지나간디. 혼자 왔는지 항상 혼자다.
피스보트 사무실에 가서 스탬프 찍는 종이를 받아 여기 저기 다니며 도장을 찍었다. 마구잡이로 찍다보니 번호가 있다. 어차피 베린 몸이니 아무데나 막 찍었다.

일본어 교실에서는 음식 주문하는 걸 배웠다.

일본어 교실을 마치고 8층을 돌아보니 여러가지 행사를 준비 중이다. 아프리카 물 나르기 체험도 있다. 크고 작은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놨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물 부족 상황을 느껴보자는 것 같다.

물물교환 행사장도 있다. 많은 사림들이 교환할 물건을 가지고 줄을 서 있다. 행사 안내문도 붙어 있는데 누가 썼는지 필체가 나만큼이나 엉망이다. 그래도 취지만큼은 참 좋다.

저녁을 먹고 7층 갑판을 돌다가 피스보트 코너에 가보니 9번 스탬프가 없어져 찾고 있다는 공고문이 붙어 있다. 나는 첫 번째로 찍었는데 그 후에 없어졌나 보다.
방으로 오다가 10층 전방에 있는 갑판에 가니 해가 지고 있다. 조용하게 찍소리도 없이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는 걸 보니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임종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욕심이 과했나.

저녁 8시 반에 평화 콘서트를 보러 12층 수영장으로 갔다. 민우씨와 홍건석님도 노래를 한다고 해서 박수 부대라도 하려고 올라갔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다들 열심이다. 사람들이 만든 대나무등도 예쁘다.

금형씨는 LED앱으로 김민우 화이팅을 쓰고 나는 홍건석 화이팅을 써서 응원했다. 여기 와서 퀵쉐어도 배우고 LED 응원도 배우고 현숙이 음청 똑똑해졌다. 오늘도 잼 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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