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모

2023. 7. 7. 최철성의 말러 교향곡 1번

아~ 네모네! 2023. 7. 9. 21:16

클래시모 202377

1. 진행자 : 최철성 회원

 

2. 감상곡 : 말러 교향곡 1

  말러는 자기 출생에 관하여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대인으로 어디에서도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말러는 지휘자로서 높은 지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곡가로서는 빈의 비평가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성격은 불같이 화를 잘냈고 완벽주의자로 괴팍했다. 말러는 음악에 있어서 그 누구와도 타협을 하지 않았으며 양보도 하지 않았다. 타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일쑤였고 일방적인 대화에 자주 몽상에 빠지기도 했다. 게다가 조울증, 정신강박증도 있어서 어떨 때는 기분이 업 다운되기까지 했다. 지휘자로서 양보와 타협을 모르는 완고함, 무자비한 완벽주의, 자기중심적, 고압적, 신경질적인 성격이 따랐고 지휘대의 독재자라고 불렸다.

  말러의 곡은 어렵다. 그 음악의 키워드는 죽음이다. 형제자매 중 여섯 명이 일찍 죽었다. 바로 밑의 동생은 권총 자살을 했다. 말러가 결혼하고 나서 두 딸을 낳았는데 큰딸이 일찍 죽었다. 그래서 말로는 평생 살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살았다. 부인 알마 말로는 구스타프 말러가 죽고 난 다음에도 정식으로 두 번 결혼했다.

  말러 교향곡 1번은 장 폴의 "거인"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작곡된 작품이다. 3악장은 프랑스의 화가 칼로의 패러디성 회화 "사냥꾼의 장례식"에서 영감을 받아 장송행진곡을 연상시키도록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브루노 발터에 의하면 이 작품은 "말러의 베르테르로서 말러의 연애와 실연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말러 자신은 이 곡을 라이프치히에서 초연하고 싶었지만 결국 188810월 부다페스트로 옮겨가게 된 뒤에야 이곡을 완전히 완성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인 18891120, 말러 자신의 지휘로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초연 당시 청중들은 처음 부분은 그런대로 견디며 들었지만 3악장(초연 당시에는 4악장)에서 유명한 보헤미아의 민요인 'Frère Jacques'가 단조로 바뀌어 등장하고, 4악장(초연 당시에는 5악장)에서 자는 사람을 확 깨울듯한 쿵쾅거리는 음악에는 더 참지 못했다고 한다. 청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말러는 189310월 함부르크에서 두 번째 공연을 할 때 이 교향곡에 장 폴의 소설의 제목을 딴 거인”(Titan)이라는 이름이 붙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말러는 몇 번의 수정을 가한 뒤 다시 그 제목을 없애고 교향곡 1번으로 하여 1896년에 베를린에서 또 한 번 초연하였다.

 

3. 감상문 : 일자무식이라 음악은 잘 모르겠고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얼마나 집중해서 연주하는지 혼이 나간 것 같았다. 그야말로 피를 말리듯이 연주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피가 말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