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7. 클래시모
1. 진행자 : 최철성 회원
2. 감상곡 : 베토벤 특집
베토벤은 1770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궁정 음악가였으며 아버지도 테너 가수였는데 어린 아들의 음악에 대한 재능을 일찍 알고 제2의 모차르트로 만들기 위해 엄한 교육을 시켰다.
17살의 베토벤은 모차르트에게 배우기 위해 비엔나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접하고 그냥 돌아왔다. 그때 모차르트 앞에서 연주 할 기회가 있었고 처음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모차르트는 어린 베토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자 친구에게, "저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겠군" 하고 속삭였다고 한다.
하이든이 런던에 갔다오다 본에 들린 것이 계기가 되어 베토벤의 비엔나 행이 성사되어 22살에 다시 비엔나에 왔으나 한 해 전에 모차르트가 죽은 관계로 그 대신 하이든에게 배웠다. 그때 후원자였던 보헤미아의 귀족 발트슈타인 백작은 '하이든의 손에서 모차르트의 영혼을'이란 글귀가 적힌 기념 카드를 주며 격려했다. 베토벤은 궁정의 직책이 없이 자유로이 음악 활동을 했는데 그 대신 부유한 귀족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20대의 베토벤은 점차 화려한 살롱 사회의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25세 되던 해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으로 비엔나 음악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별 것 아닌 것처럼 시작한 귓병은 평생 그를 음악적으로보다 정신적으로 더 괴롭혔다. 불행히도 귓병은 점점 악화되었고 제자와의 사랑이 실패하는 등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좌절하여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하던 때 동생에게 유서를 보내고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후 10년 동안 수많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 때를 가리켜 '명작의 숲'이라고 부른다.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와 염문을 뿌린 여성 몇이 있었는데 '월광 소나타'를 바친 제자 줄리에타 귀치아르디와 헝가리 귀족 브룬스비크 백작의 두 여동생 테레제와 요제피네가 있는데 2차 대전 후에 베토벤이 요제피네에게 쓴 편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죽기 한 해 전 겨울 조카와 함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폐렴에 걸린 것이 발단이 되어 영영 눕고 말았다. 베토벤의 사인은 납중독이었을 것이라고 하며 그는 누군가 자신을 독살할 줄 모른다고 의심하여 몰래 생수를 배달시켜 마셨는데 그 생수 회사 근처에 납 광산이 있었다고 한다. 1827년 천둥이 몹시 치던 날 병상의 베토벤은 눈을 크게 뜨고 오른 주먹을 허공에 몇 차례 들어 보이더니 침통한 표정을 짓고 나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방안이 환해지고 뇌성이 크게 울렸다고 전해지는데 그 광경은 마치 그의 대표작 '운명' 교향곡의 첫 부분을 연상하게 하며 하늘도 이 위대한 음악가의 죽음을 슬퍼했던 것 같다.
(1)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Op. 13
첫 번째는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인데 곡 자체도 좋지만 그 음악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태어난 독일의 본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온 후 이름도 알렸고 그로 인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한다. 26살 때 연주회에 갔다 와서 귀가 안들린다는 걸 알게 된다. 2악장으로 들어가면 멜로디가 너무 너무 예뻐서 이게 귀 아픈 사람이 쓴 멜로디가 맞나 싶다. 이게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베토벤이 직접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였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아마도 자기가 그 작품을 통해서 정말 진심으로 간절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던 게 아닐까?
김용진의 해설 : 저는 누구보다 기쁨을 잘 표현했던 작곡가가 바로 베토벤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럼 왜 베토벤이죠? 작곡가로서 피아니스트로서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베토벤은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그 외에도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이었다, 아 난 내 안에 느끼는 것을 모두 꺼내놓을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즉 죽음이 엄습할지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 음악을 하다 세상을 떠나겠다는 베토벤에 의지가 담겨 있는 유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청중들에겐 인정받지 못했던 곡이죠.
(2)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Op. 58
작품의 첫 스케치는 1804년 2월에 시작되고 있다. 베토벤이 본격적으로 작곡에 착수한 것은 그 이듬해로,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최종 완성 이후 초연이 이루어진 다음 해이자,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근원이 된 작품, 《레오노레》의 초고가 초연된 해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806년에 드디어 이 악곡이 완성되었다.
베토벤은 반주 역으로 치부하기 쉬운 관현악과 피아노라고 하는 독주 악기가 서로 대화하듯 악곡을 만드는 기법도 도입하였다.
(3) 교향곡 3번 "영웅"
"Eroica" Op. 55
오늘 연주는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93세 때 지휘한 것이다. 최고의 교향곡이라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당연히 1위 일줄 알았는데 3번 영웅이었다. 영웅이 가장 최고가 된 이유 중 하나는 교향곡의 길이다. 하이든과 모짜르트가 닦아놓은 고전주의 음악에서 교향곡은 30분 이내로 작곡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베토벤이 2배의 길이로 작곡했다. 너무 길다는 평이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를 굽히지는 않았다. 연주 시간이 길어진 만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영웅은 여태까지 있었던 교향곡 형식에 많은 변화를 준 작품이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정신을 전 유럽에 전파하고 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굉장히 흠모하고 있던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바로 이 교향곡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부제로 보나파르트에게 바친다는 자필 싸인을 했다. 하지만 비공개 초연이 된 그해 연말에 파리로부터 아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온다. 나폴레옹이 파리에서 황제로 대관식을 올렸다는 소식이다. 그 후 너무 실망한 베토벤은 표지에 쓴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한다는 글을 빡빡 지워버린다.
3. 감상문
음악에는 작곡자의 혼이 들어있다. 그 혼이 악보로 들어가고 그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연주자에게 들어간다. 연주자의 연주를 통해 다시 청중에게 들어간다. 베토벤의 혼이 들어간 듯한 연주자와 지휘자를 보며 나도 베토벤의 혼에 홀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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