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2. 16. 네모네 방

아~ 네모네! 2017. 2. 27. 18:22

네모네 방

아 네모네 이현숙


   얼마 전 성수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과 만났다. 코다리찜을 먹다가 한 사람이 자기 집 개 이야기를 꺼낸다. 집에서 시베리아의 썰매 끄는 개를 키운단다. 사료를 먹이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이는데 요즘은 코다리 머리를 푹 고아서 먹인단다. 개는 소금을 먹이면 안 되기 때문에 사람이 먹던 음식은 주지 않고 개 먹이는 따로 만든다고 한다. 콩을 갈아 비지를 만들어 돼지고기를 넣어 끓여주면 환장을 하며 먹는다고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강아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생기기도 잘 생겼다. 며칠 여행 갔다 왔더니 반갑다고 소리치며 달려드는 모습을 찍었는데 자식보다 더 반긴다. 이래서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폭 빠지나보다.

   강아지 집도 보여줬는데 커다란 집에 문패까지 붙였다. 이름이 이라서 한자로 눈 자를 써 붙였다. 나는 여태 내 이름으로 된 문패 한 번 못 붙여 봤는데 개 팔자가 인간 팔자보다 낫다.

   카카오스토리 공지사항에 같이 산에 다니는 사람의 생일이란 문자가 떴다. 오래 못 만났던 터라 생일 축하한다고 이모티콘 하나 날렸다. 고맙다며 곧 뵙겠다고 답장이 왔다. 카톡방에 들어가 그 사람의 프로필 배경 사진을 누르니 강아지 사진이 뜬다. 럭셔리한 강아지 집에 강아지가 얌전히 앉아있다. 지붕에 창이 있고 옆의 벽면에도 창이 있다. 정면은 레이스로 멋있게 장식하고 ‘choco’라고 문패도 붙였다.

   강아지는 머리에 예쁜 핀을 꽂고 동그란 방석에 앉아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앉아있다. 옆에는 예쁜 인형이며 가방, 뼈다귀 모양의 장난감들이 즐비하다. 자신이 공주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참 환장할 지경이다. 내 딸보다 훨씬 낫다. 나는 내 딸을 이렇게 예쁘게 키우지 못했다. 이건 공주보다 더 하다. 강아지 집 옆에는 빨간 강아지 소파까지 준비해 놓았다. 세상 천지에 이런 집에서 사는 인간이 몇 명이나 될까?

   인도 갔을 때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건축 폐기물 쌓아 놓은 곳을 지나갔다. 그런데 거기서 사람이 나온다. 자세히 보니 곳곳에 빨래가 널려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속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처참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개만도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을까?

   쿠바에 갔을 때 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보러갔다. 유명세에 걸맞게 숲에 싸인 아름다운 집이다. 서재도 넓고 그가 사용하던 의자와 탁자가 있다. 의자 옆에는 하얀 휴지통이 보인다. 글을 쓰다가 맘에 안 들면 구겨서 이 휴지통에 버렸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탁자 위에는 연필깎이와 스태플러도 보인다. 한쪽 벽은 전체가 책꽂이인데 책이 가득 꽂혀있다.

   그는 작업에 방해가 될까봐 손님이 오면 별관에서 맞이하고 본채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아버지도 본채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별관인 영빈관에서 아들을 만나고 돌아갔다고 한다. 철저한 프로 정신이라고 해야 하나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해야 하나? 내 아들이 이랬으면 엄청 서운할 것 같다. 지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나서 나를 손님 취급하나 하고 속으로 욕 했을지 모른다. 하긴 장가 간 아들을 아직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미친년인지도 모른다.

   후원에는 강아지와 고양이 묘가 즐비하다. 예쁜 대리석으로 묘비까지 세워준 걸 보면 이 동물들은 본채에서 주인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내 팔자에 이런 서재는 언감생심 꿈꾸지 못할 것이고 글 쓰는 서재라도 하나 만들고 싶다. 지금 내가 글쓰기를 하는 이 작은 방에 방패를 붙인다면 이름을 뭐라고 할까? 내 별명이 아 네모네니까 감탄사인 ~’는 빼버리고 네모네 방이라고 하고 싶다.

   면목중학교에 근무할 때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반 담임 선생님이 좇아온다.

선생님,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알아요?”

아뇨, 모르는데요.” 하니까

아네모네래요.” 한다.

내심 아네모네 꽃을 생각하며 흐뭇하여 아네모네요?” 하고 되물으니

아네모네가 아니고 아~ 네모네요. 선생님 얼굴이 네모라서 아이들이 그렇게 불러요한다.

조금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메주라고 하지 않은 걸 감지덕지하며 그 별명을 지금까지 닉네임으로 쓰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특히 글 쓰는 사람들은 서재 하나 갖는 것이 공통된 꿈이다. 네모네 방에서 헤밍웨이 같은 걸작은 쓰지 못해도 횡설수설 헛소리라도 늘어놓으며 여생을 보낸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아니 이참에 그냥 미친 척하고 문짝에다 네모네 방이라고 써 붙여볼까? 이걸 보면 남편이 나를 정신병원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 내가 남편보다 오래 살면 한 번 해봐야겠다.


- 헤밍웨이의 집과 서재 -







- 네모네 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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