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1. 12. 회전하는 그림자

아~ 네모네! 2016. 7. 9. 14:41

회전하는 그림자

아 네모네 이현숙

   아침 해가 떠서 해질 때까지 빙하 위에서 하루 종일 걷는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왼쪽에 길게 누워있는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며 앞으로 온다. 다시 길어지며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해가 지면 내 그림자도 슬그머니 사라진다.

   알라스카에 있는 매킨리산에 올랐다. 앵커리지에서 버스로 세 시간을 달리면 탈키트나공항에 닿는다. 여기서 헬기를 타고 해발 2200미터 랜딩포인트에 내린다. 여기는 국립공원 직원이 상주하는 텐트가 있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인 빙하 위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은 헬기는 곧 다시 탈키트나로 돌아간다. 우리는 여기서 18일 동안 사용할 휘발유를 사고 썰매와 설피를 대여했다.

   휘발유와 쌀 기타 장비까지 모두 썰매와 배낭에 나누어 싣고 출발한다. 나에게 배당된 짐은 약 37킬로그램이다. 배낭에 끈을 매고 썰매를 매달아 끌고 간다. 플라스틱 삼중화에 설피까지 신으니 한 발짝 떼기도 힘들다.

   하루 종일 걷고 1캠프를 설치한다. 물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삽으로 눈을 퍼 다가 녹여서 밥을 해먹는다. 다음 날 눈 뜨면 또 걷기 시작이다. 2캠프, 3캠프를 거쳐 4캠프까지 쳤다. 여기가 매킨리산의 베이스캠프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 마디로 인간썰매 끌며 개고생 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라는 말이 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그냥 무심히 읽었다. 매킨리 빙하 위에서 1718일 동안 걸으며 이 구절을 확실히 깨달았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내 그림자가 하루 종일 회전하는 것을 눈으로 보니 당연한 것인데도 신기하다.

   해가 강할수록 그림자는 어두워진다. 하얀 눈밭에 내 그림자가 까맣게 박혀있다. 내 그림자에 긴 끈과 썰매도 붙어있다. 태양이 강한 힘으로 내 안의 검은 입자를 밖으로 몰아내나보다. 나는 빛과 어두움으로 분리된다. 석양이 뉘엿뉘엿 기울면 검은 입자는 슬금슬금 내 안으로 스며든다. 해가 넘어가는 순간 모든 입자가 다시 하나로 합체한다.

   인간은 선과 악, 빛과 어두움을 함께 가지고 있다. 사랑이 있는 만큼 증오도 있고, 기쁨이 있는 만큼 슬픔도 있다. 사랑을 많이 내 뱉는 사람 안에는 증오가 많이 남아있고, 기쁨을 많이 내 보내는 사람은 슬픔을 많이 안고 있다.

 

   뉴스 시간 화면 밑의 자막에 50대 여인이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 되었다는 글이 뜬다. 순간 동생이 아닌가 하고 가슴이 철렁한다. 알콜 중독으로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막내 동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부모 안에 있던 밝은 요소를 위의 다섯 언니들이 모조리 갖고 나와 막내는 어두움 밖에 가질 수 없었던 걸까? 막내는 언니들 다섯 명의 그림자인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나간 후 몇 달 째 행방이 묘연한 막내에게서 5번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친구 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가슴을 쓸어내린다. 힘들어 하는 막내를 볼 때마다 뭔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동생 것을 내가 빼앗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게 그저 미안하다.

 

   그림자 없는 인간이 있다면 얼마나 섬뜩할까? 그림자만 있는 인간이 있다면 얼마나 소름 끼칠까? 둘이 합쳐야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처럼 모든 생물과 무생물은 실체와 그림자를 모두 가질 때 온전한 존재가 되는 가보다.

   젊어서는 내가 실체였다면 지금은 내가 자식들의 그림자다. 자식들의 모든 어두운 면을 내가 흡수하여 그들이 밝은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 나무가 온전히 서려면 땅속에서 든든히 자리 잡고 있는 뿌리가 있어야하듯 내가 이들의 뿌리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