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즉사?
이현숙
신호등 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서있다. 운동을 하고 오는 사람들 같다. 산기슭에 있는 베드민튼장이나 족구장에서 운동하고 내려오는 듯하다. 한 남자가 이렇게 운동하면서 건강하게 살다가 빨리 가는 게 최고라고 한다. 아프지 않고 빨리 죽음의 문턱을 넘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소원이 아닐까?
막내 여동생은 작년 10월에 뇌수술을 받았는데 여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아홉달이 됐다. 목 뚫고 콧줄 끼고 눈도 못 뜨는 동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목의 가래를 뺄 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게 과연 잘 하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놔뒀으면 벌써 편안한 세상으로 갔을 텐데 가지도 못하게 붙들어 매 놓고 고문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 바로 밑의 여동생은 남편 병간호를 위해 두 달째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제부가 작년부터 몸이 아파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온갖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다. 본인은 몸을 가누지 못해 화장실도 못 가는데 이상이 없다니 환장할 일이다. 동생은 하도 답답해서 철학을 한다는 사람에게 물어봤단다. 작년 12월부터 아팠다고 딱 맞히니까 솔깃하게 마음이 움직였나 보다. 방생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거북이는 비싸니 자라로 하라고 해서 1주일에 한 번씩 자라 방생을 한단다. 자라값 2만 5천원에 인건비 10만 원인데 철학 하는 사람이 대신해주니 돈만 보내면 된다고 한다.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면서 방생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준단다. 오죽 답답했으면 저렇게라도 할까 싶어 안쓰럽다.
제부는 누군가 자기를 감시하고 자기를 조종한다고 하고 잠자면서도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동생이 대소변을 받아내는데 자기의 배설물을 보면서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단다. 정말 환장할 일이다.
이번에 입원한 곳에서는 루이소체치매인 것 같다고 치매약을 주는데 이 병은 치료약이 없고 약을 먹으면 진행을 조금 늦출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제부는 자기가 빨리 죽지도 않을 것 같은데 돈 다 까먹고 죽으면 남은 가족이 길거리에 나 앉게 될 거라고 걱정이 태산이란다.
참 병도 가지가지다. 의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못 고치는 병이 참 많다. 동생은 수시로 대소변을 받아내느라 몇 달째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한다. 입원한 지 세 달이 지나야 장애등급 심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석 달을 채우는 중이다. 장애등급을 받아야 요양사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환자는 꼼짝을 못하는데 왜 석 달을 채워야 하는지 참 이상한 법도 있다.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면 장수가 꼭 축복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앞집 아저씨는 부인이 외출한 사이에 갑자기 죽었다. 외출하기 전까지 멀쩡했는데 나갔다가 집에 와보니 이미 죽었다고 했다. 세상에는 이런 죽음도 있다. 나도 이런 죽음을 맞고 싶다. 우리 교회 여자 장로님 남편은 집에서 반신욕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가족들이 다 집에 있었는데 오래도록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들어가 보니 벌써 죽었단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천복을 타고 나서 이토록 쉽게 가는 것일까.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 보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죽음을 원한다. 오죽하면 9988234라는 말이 생겼을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 죽자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100세 시대라서 9988231이란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 일어나자는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생물의 염원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삶은 재앙인 것 같다. 건강하게 살다가 빨리 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즉사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소원은 통일이 아니고 즉사인 것 같다.

막내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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