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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5. 7. 9. 이끼 할머니

by 아~ 네모네! 2025. 7. 9.

이끼 할머니

이현숙

 

  망우산에 올랐다. 어떤 할머니가 쌍지팡이를 짚고 나를 추월해서 올라간다. 깔딱고개에 올라서니 그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다른 여자와 얘기하고 있다. 나를 보더니 "어르신, 여기까지 올라오셨네요." 한다. 능선길로 가느냐고 해서 그렇다고 하니 같이 가자고 일어선다. 정겹게 얘기하길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다. 날 보고 몇 살이냐고 하기에 77이라고 하니 자기보다 한 살 많다고 하며 자기는 호랑이띠라고 한다. 나에게 어르신, 어르신 하기에 엄청 젊은 줄 알았더니 한끝 차이다. 내가 정말 나이 많아 보이기는 하나 보다.

  1보루를 향해 올라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자기는 식당을 35년간 했는데 몸이 많이 망가져 허리, 무릎 등 수술을 열 번 했단다. 장안동 살아서 주로 매봉산에 갔는데 야자 매트를 다 깔아놔서 이리로 왔단다. 자기는 흙을 밟아야 다리에 쥐가 안 나서 잠을 잘 잔다고 한다. 그러면서 매트가 깔린 곳에서는 일부러 옆의 흙 쪽으로 가서 걷는다. 쥐가 하도 잘 나서 약을 계속 먹었는데 요새는 약을 끊었다고 한다. 신을 신고 걷는데도 효과가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맨발 걷기가 좋다고 해서 맨발로 걷다가 세균에 감염되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당 수치가 높으니 절대 맨발로 걷지 말라고 했단다.

  능선길을 걸으며 자기 조카가 정형외과 의사라는 둥, 올케가 마취과 의사라는 둥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남편은 79살인데 걸을 생각은 안 하고 집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TV만 본다고 한다. 하도 술을 좋아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꼼짝 않고 있다가 친구가 술 마시러 오라고 하면 쏜살같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남편은 있느냐고 묻는다. 3년 전에 하늘나라 갔다고 하니 혼자 사느냐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적적하겠다고 위로를 한다. 어느 길로 내려가느냐고 하기에 아스팔트길 만나면 데크길로 간다고 했더니 오늘은 자기를 따라서 흙길로 내려가자고 한다.

  화장실 앞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가자고 해서 앉았더니 빵과 토마토를 꺼내 반씩 갈라서 먹으라고 준다. 칼도 준비해 오고 시원한 물도 가져왔다. 토마토는 자기집 옥상에서 키운 거라고 한다. 잘 먹고 다시 걷다가 운동기구가 나타나자 운동을 하고 가자며 철봉에 매달린다. 나도 남편 간 이후로 처음 운동을 했다. 거꾸로 눕는 기구를 보자 거기 누웠던 남편 생각이 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걷기도 열심히 했는데 왜 그리 빨리 갔나 모르겠다. 운명은 재천이라더니 명이 거기까지 밖에 안 됐나 보다.

  운동을 마치고 계속 내려오다가 큰 나무 앞에 서더니 기를 받고 가자고 한다. 한 발은 나무 가까이 놓고 90°로 굽히고, 한 발은 뒤로 뻗은 후 나무를 밀며 스트레칭을 하라고 한다. 나야 뭐 아는 게 없으니 시키는 대로 했다.

  데크길이 나타나자 옆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여기도 남편 간 후로 걷지 않던 길이다. 앞서 가는 할머니를 보니 내 앞에서 걷던 남편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나에게 수시로 조심하라고 한다. 아마 50번 이상은 한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이 할머니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저리도 붙임성이 좋을까 부럽기도 하다. 나는 평생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붙여 본 적이 없다. 용기도 없고 별로 그럴 마음도 없었다. 나와 정반대의 할머니를 보니 이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끼는 다른 생물이 자랄 수 없는 곳에 정착하여 자라면서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다른 식물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접착제가 되어주는 것이다. 저런 이끼 할머니가 있어서 세상은 서로 연결되고,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훈훈한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되나 보다. 나같이 목석 같은 인간은 저런 할머니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오늘은 평소 걷지 않던 길을 걸으니 나도 좋았다. 우리 아파트 앞에 와서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니 다음에 또 만나자고 하며 웃음을 짓는다. 자기는 또 복지관에서 하는 노래 교실에 간단다. 참 행복하게 사는 할머니다. 오늘은 이끼 할머니 덕에 지루할 틈 없이 산행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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