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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2025. 4. 23. 거제도 기행문

by 아~ 네모네! 2025. 4. 29.

묻지 마 여행

 

이현숙

 

기간 : 2025423~ 2025428

장소 : 거제도

 

티엔티 여자들 다섯 명이 거제도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거제도 남파랑길을 걷기로 했다.

 

423일 출발

  수원시청역에서 910분에 만나 버스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집에서 7시에 출발하면 충분한데 새벽 4시에 깨서 잠이 안 온다. 나이가 들수록 매사에 자신이 없으니 더 조급해지는것 같다.

  일찌감치 일어나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무거운 짐을 들고 배낭도 지고 집을 나섰다. 출근 시간이라 전철에 사람이 많다. 배낭 지고 큰 짐까지 들고 서 있으니 완전 민폐다. 논현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탄 후 정자에 가서 수인분당선을 탔다. 정자역에서는 처음 환승해 보니 어리버리하다.

자리에 앉아 기행문을 쓰는데 옆의 여자가 "작가세요?" 한다.

그냥 혼자 중얼중얼 일기 쓰는 거라고 했더니 "멋지세요." 한다. 내 생전에 멋지다는 소리 처음 들어본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수원시청역에서 정연씨와 택시를 타고 수원버스터미널로 갔다. 다섯 명이 모두 모여 고현 가는 버스에 오르니 잠이 쏟아진다. 양숙씨가 날 보고 숙박비 내란다.

  금산휴게소에서 어묵과 핫도그로 점심을 해결했다. 통영을 거쳐 고현터미널에 내리니 40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여동생이 여기 살았다. 제부가 삼성조선과 관계된 일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섬 전체가 비포장도로였다. 동생이 가르쳐준대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렸다. 어느 집일까 찾다가 남편이 저 집이라고 한다.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 저 집만 창문에 방충망이 붙어있다는 것이다. 가보니 정말 동생네 집이었다. 조카 지연이는 어렸고 여동생은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왔다고 만삭의 몸으로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몽돌 해수욕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 참 많이도 변했다.

  터미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한화리조트로 갔다. 다섯 명이라 어찌할까 망설이는데 다행히 태워준다. 미터기에 나온 금액보다 5천 원만 더 내고 잘 왔다.

  명수씨가 예약했으니 체크인을 했다. 발 빠르고 머리 빠른 순환씨와 정연씨는 호텔 직원에게 갈만한 곳을 알아보느라 바쁘다. 방에 오니 작은 모니터에 'hello, 박명수님'이란 문구가 쓰여있다. 이렇게 하면 뭔가 대접 받는 기분이다.

호텔에 'BELVEDERE 벨베디어'라고 쓰여있는데 뭔소린가 찾아보니 좋은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세운 전망대란다. 이름에 걸맞게 전망이 끝내준다.

  방으로 들어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내일 버스 탈 장소를 알아놓고 농소리식당으로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 아침부터 제대로 식사를 못 했더니 맛이 환상이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 스케줄을 짰다. 똘똘이 순환씨가 지도도 보고 버스 회사에 시간표도 물어보며 똑 소리나게 준비했다. 역시 나는 동생 복이 많다. 다섯 명이 한 방에 묵으니 스케줄 잡기도 좋고 수다 떨기도 좋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424일 내도

  늦게 일어나도 되는데 5시부터 일어나 설쳤다.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이바구 운동을 했다. 순환씨가 끌고온 배낭이 좋아 보인다고 모두 사자고 했다. 하지만 마땅한 게 없어 다음에 사기로 했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가 아련하다.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된다.

  호텔을 나서니 개구리소리도 들린다. 815분에 한화리조트 앞에서 31번 버스를 타고 고현터미널로 갔다. 1시간 정도 걸린다. 거제도는 정류장 이름도 정겹다. 답답고개, 산속농장 등 재미있는 이름이다.

  고현터미널에 내려서 936분에 출발하는 23번 버스를 타고 구조라선착장으로 갔다. 여기까지 또 1시간 걸렸다. 삼정에서 내리니 거기가 구조라선착장이다. 내리자마자 'CAFE78번지'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내도로 틀어가는 1시 배를 예약하고 근처를 돌아다녔다. 내도까지 왕복 18000원이다. 시간이 1시간 반 정도 남아서 구조라성 샛바람소리길 쪽으로 올라갔다. 골목길의 벽화가 예쁘다.

구조라성 쪽으로 올라가는 길의 대나무 숲도 멋지다. 구조라성은 새로 복원했는지 깔끔하다.

성에서 바라보는 구조라마을이 환상이다.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거기에 사람까지 들어가니 화룡점정이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는지 이해가 된다.

구조라성을 지나 수정봉 전망대로 올라갔다. 내도와 외도가 지척이다.

  수정봉에서 내려와 다시 선착장으로 갔다. 외도 가는 선착장 옆에 있는 내도 선착장에 가서 배를 탔다. 정원이 98명인데 승객은 우리 다섯과 남녀 한 쌍이다. 달랑 7명 밖에 안 되니 괜히 미안하다. 내도에 내려서 NAEDO라고 쓴 글씨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도 명품길로 올라갔다.

  쉼터에서 간식을 먹고 대나무길을 지나 세심전망대로 올라갔다. 계속 올라가니 연인길삼거리가 나온다. 연인길 쪽으로 가다보니 남자나무와 여자나무가 나타난다. 여자나무는 줄기가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데 남자나무는 세 갈래다. 남자는 가운데 다리까지 해서 세 개인가 보다.

여기서 계속 가면 신선전망대가 나타난다.

  다시 연인길삼거리로 돌아와 왼쪽길로 접어들면 희망전망대가 나타난다. 여기서 계속 내려오면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310분 배가 들어온다. 주민이 짐을 잔뜩 들고 내린다. 내도에는 총 9가구가 산다고 한다. 이 배를 타고 10분 오면 구조라선착장이다.

  삼정에서 4시에 22번 버스를 타고 고현터미널로 돌아왔다. 오봉식당에 가서 오징어볶음과 수육, 막국수를 먹고 파리바게트에 가서 빵을 샀다. 터미널로 와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어제 택시 기사는 5천원 더 달라고 하더니 오늘 기사는 5천 원을 더 주겠다고 해도 안 받는다. 프로정신이 강한가 보다. 오늘은 버스를 오래 탔더니 속이 메슥거리고 멀미가 난다. 내일은 근처에서 놀기로 했다.

 

425일 저도

  연이틀 동안 아침, 점심을 빵으로 먹었더니 뱃속 사정이 말씀 아니다. 어제 버스까지 오래 탔더니 멀미까지 겹쳐 죽을 맛이다. 소화제를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다. 오늘은 식사 후 위장약을 먹었다.

  아침식사 후 벨베디어 호텔을 나왔다. 호텔 이름이 왜 그리도 어려운지 이거 외우는데 3일 걸렸다. 그냥 쉽게 거제 한화리조트라고 하면 좋을텐데.

검색의 여왕 순환씨 덕에 농소몽돌해수욕장을 지나 궁농선착장까지 50분 걸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시간이 많이 남아 데크 쪽으로 가보니 낚시질하는 사람이 보인다. 주차장 옆에 있는 망봉산 둘레길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정연씨는 원장님 살아계실 때 돈이 필요하면 money 춤을 춘다며 시범을 보여준다.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머니 머니" 하면서 춤을 춘 후 마지막에 엉덩이를 싹 내민다는 것이다. 그러면 엉덩이에 돈을 착 얹어준단다. 원장님은 이렇게 애교가 철철 넘치는 예쁜 부인을 두고 어떻게 가셨나 모르겠다.

 

 

  부지런히 내려와 배에 오르니 선장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저도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거제도 계룡산 기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의 3대 명당 중 한 곳이 저도다. 강한 기운이 흐르는 곳이라 여기에 대통령 별장을 지었다. 1973년에 별장이 완성됐다. 그후 문재인 대통령이 일반에게 개방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근무할 때 지었는데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전망대가 세 개 있고 400년 된 곰솔나무가 있다. 거기서 내려오면 연리지가 있고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25분 정도 걸린다. 하늘에서 보면 돼지가 누워있는 것 같아서 저도猪島라고 불렀다.

  군함인 참수리호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 동영상도 찍으면 안된다. 화장실은 별장 가는 길에만 있다. 125분에 배가 출발하니 그 전에 돌아와야 한다.

  저도에 도착하여 제2전망대 쪽으로 갔다. 거가대교가 멀리 보이고 전망이 시원하다. 바다에는 물질하는 해녀도 보인다.

3전망대에 오르니 거가대교가 발아래 펼쳐진다.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다.

거기서 제1전망대로 이어진다. 1전망대에는 일본군 탄약고도 있고 포진지도 있다. 요소요소에 직원들이 기다렸다가 안내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니 귀빈이 된 것같다.

내려오는 길에는 400년 된 곰솔도 있고

옥녀꽃대도 피어 있다.

  돌아오는 배에 오르니 선장님이 우리 자리로 와서 이것저것 안내를 해준다. 우리가 매미성에 가는 길을 물으니 매미성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매미성은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농토를 모두 잃은 백순삼씨가 13년 동안 맨손으로 성을 쌓은 곳이다.

  이수도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는데 이수도는 이로울 와 물 를 쓴다. 즉 물이 이로운 곳이다. 일본인이 처음 어장을 설치하고 들어온 섬이며 13식 먹방투어를 하는 곳이다. 돈 폭탄 맞은 섬이라고도 한다. 거제시에서 950억 원을 들여 다리를 놓아주려 했으나 주민 모두가 반대했다. 다리를 놓으면 자동차를 타고 들어와 그냥 구경하고 나가기 때문에 13식 먹방투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돌아오다가 돌고래도 봤다.

  궁농선착장으로 돌아와 생선구이를 먹었다. 테이블에 웬 종이가 보여 꺼내보니 수저를 놓는 종이다. 사장님이 깔끔한 성격인가 보다. 뭔가 믿음이 간다.

식사를 마친 후 오며 가며 눈여겨 보아둔 '커피 베이커리' 카페로 차를 마시러 가는데 버스 정류장에 안내문이 보인다.

313일에 종이박스 줍는 리어커를 가져간 사람은 다시 갖다 놓으라는 것이다. 한달이 넘도록 여태 못 찾았나 보다. 안타깝다.

  카페 앞에 이르니 전망이 환상이다. 입구에 있는 편백나무는 이태리 베드로순례길 걸을 때 보았던 싸이프러스 나무를 연상시킨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호텔로 돌아왔다.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모습이 보기 좋다. 확실히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비타민이다.

  뙤약볕에서 몽돌해변길을 걸어왔더니 골이 핑핑 돈다. 이거 돈 내고 하니까 하지 돈 주고 하라면 절대 못한다. 오늘 2만보 넘게 걸었다. 저녁은 호텔 매점에서 어묵을 사다가 간단히 해결했다.

 

426일 옥림

  오늘도 1등 기상은 양숙씨다. 항상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긴다.

정연씨는 일어나자 마자 꿈 얘기를 한다. 원장님이 태국의 귀족으로 환생했는지 멋진 저택에서 태국 부인과 애 둘까지 데리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살아 생전에 다음 생에는 귀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었는데 소원 성취했나 보다. 내 남편은 머슴으로 태어났나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아니면 환생을 하지 않고 곧장 천국으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콜택시를 부르니 10분이면 온단다. 순환씨가 5명이라고 하니 사고가 났을 때 5명은 보험이 안 되니 한 명은 누가 보험을 안 받을 건지 정하란다. 내가 한 달이라도 빨리 태어났으니 보험을 안 받겠다고 하자 다들 웃음을 터트린다.

  옥림 앞에서 내리니 바로 남파랑길 20코스가 이어진다. 바닷가에 갈매기 두 마리가 다정하게 앉아 있다. 정연씨가 "갈매기도 짝이 있는데 나는 없네." 한다. 확실히 혼자 있는 것보다는 같이 있는게 보기 좋다. 하나님이 왜 여자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간다.

장승포 방향으로 걸었는데 갯바위에 낚시꾼들이 보인다.

데크길이 끝나니 정자가 나타나고 산길로 이어진다.

장승포 쪽으로 계속 가다가 되돌아 나와 정자에서 데크길 대신 동백 숲길로 들어섰다. 동백 필 때 오면 참 예쁘겠다.

마을로 들어와 옥돌카페로 갔다. 여기서 커피와 몽블랑빵으로 요기를 했다.

지세포쪽 남파랑길 20코스를 걸었다. 여기도 몽돌해변이다.

지세포에 도착하여 강성횟집으로 갔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우리가 아홉 번째다. 밖에서 앉아 기다리다가 들어가니 한상 떡 벌어지게 나온다.

오늘도 배터지게 먹었다. 오늘 회는 정연씨가 쐈다. 남편 결혼기념이란다. 택시를 불러 호텔로 돌아왔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우린 개행복이다.

 

427일 이수도

  어제 커피를 마셨더니 밤 12시가 되도록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양숙씨는 정연씨가 준 수면제를 먹더니 쌔근쌔근 잘도 잔다.

  이수도 가는 배는 예약을 안 빋아 호텔에서 7시에 출발했다. 5명이라 택시를 타려면 애교 만점 정연씨가 항상 미인계를 써야 한다. 시방선착장에 오니 735분 임시 배가 있단다. 승객은 낚시꾼 몇 명에 우리들 뿐이다.

배 타는 시간은 10분 정도다. 이수도선착장에 내리니 배 타려는 사람들이 엄청나다. 어제 와서 13식하고 가는 사람들인가 보다. 사람도 없는데 왜 임시 배를 운항하나 했더니 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서 그랬나 보다.

  선착장에 내려서 왼쪽 방향으로 한바퀴 돌기로 했다. 가면서 보니 여기 방파제의 테트라포드는 각이 진게 좀 특이하게 생겼다.

해돋이전망대에 오르니 다도해의 아련한 풍경이 펼쳐진다.

출렁다리도 지나간다.

  물새전망대 방향으로 가는데 잘린 나무가 보인다.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양이다. 금새라도 한 바탕 할  태세다. 여자나무라고 명명했다.

계속 올라가다가 정연씨가 엉덩이 회전 운동을 하자고 한다. 정연씨는 예쁘게 잘도 하는데 나는 마른 장작개비 같아서 영 어색하다.

 

 

더 올라가니 이물섬전망대가 나타난다. 3층으로 된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한려수도 바다를 보며 바나나를 먹었다. 전망대 앞에는 이수도 공동묘지가 있다. 주민이 얼마 없으니 묘지도 몇 개 안 된다.

여기서 내려오니 민박촌이다. 학교민박은 폐교를 활용해서 만든 민박집이다. 8월까지 주말은 예약이 완료됐단다. 어제 이수도에 1200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서 냄비팥빙수를 먹었다. 냄비에 담아주는 팥빙수는 첨 먹어본다. 거금 17000원이다. 다섯 명이 퍼먹어도 남는다. 배는 아일랜드 2호 한 대뿐이다. 이걸로 계속 왕복한다.

시방선착장에 내려 외포항을 향해 걸어가다가 예쁜 꽃이 보이는 집이 보여 안으로 들어가 구경했다. 벽 색깔을 파랗게 칠해서 더 예쁘다.

  외포항까지 가는데 땡볕에 아스팔트길을 걸어가려니 길바닥에 쓰러질 지경이다. 이 구간은 남파랑길 18구간 이다. 완주는 못 해도 매일 조금씩은 걸었다.

  외포항으로 들어가 유명하다는 국자횟집에 가니 단체손님이 많아 개인은 안 받는단다. 옆에 있는 외포9번횟집으로 가니 여기도 만원이다. 대기표에 이름을 적어놓고 마냥 기다렸다. 2023년에 '한국인의 밥상' 프로에 나왔다고 최불암 사진이 붙어있다. 밥 얻어먹기 참 힘들다.

겨우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음식이 득달같이 나온다. 멸치 코스요리를 시켰더니 멸치 회무침, 멸치 튀김, 멸치매운탕까지 한상 떡 벌어지게 나온다, 배고프고 지쳐서 정신 없이 퍼 먹었다.

  음식점을 나와 2000번 버스를 타고 매미성으로 갔다. 지친데다가 배 터지게 먹었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꼬박꼬박 졸았다. 세상 구경도 쉬운 게 아니다.

  버스를 타고 대금교차로 정류장에서 내려 심해 카페로 갔다. 심해라고 해서 깊은 바다를 연상했더니 마음이다. 마음의 바다라는 뜻인가?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든다. 카페에서 나와 매미성으로 갔다. 매미성은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씨가 자연재해로 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천년바위 위에 쌓아올린 성벽이다.

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쌓았는지 경이롭다. 매미성이라고 해서 매미가 많이 사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태풍 이름이다.

  매미성을 나와 콜택시를 부르니 여자 기사가 처음에는 온다고 하다가 5명이라고 하자 안 오겠단다. 할 수 없이 두 대에 나누어 탈 각오를 하고 일단 하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남자 기사다. 순환씨와 정연씨가 애원을 하자 태워주기는 하는데 내릴 때 한꺼번에 내리지 말고 일부는 미리 내리라고 한다. 그래서 호텔 오기 전에 세 명이 미리 내려서 걸어 왔다.

  4층에 있는 매점에 들러 내일 아침에 먹을 것을 사가지고 방으로 오니 오늘도 기진맥진이다.

 

428일 집으로

  오늘은 집으로 가는 날이다. 이번 숙소는 침대에 누워서도 바다가 보인다. 그야말로 전망 좋은 방이다.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을 대충 때웠다. 요즘은 전날 식당에서 남겨온 밥과 호텔 매점에서 사온 김치, , 된장국으로 때운다. 이러다 부자 되겠다.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이번에는 지난번과 반대 방향으로 탔다. 이쪽 방향으로 가야 시간이 적게 걸린다. 집에 갈 때가 되니 감이 좀 온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턱 놓인다. 5명이 택시 타려고 기사에게 애교를 부리며 알랑방구 안 뀌어도 되니 넘~ 좋다.

  이쪽 길로 오니 길도 좋고 시간도 짧다. 고현 터미널에 도착하여 정연씨와 순환씨는 다음 여행 때 입는다고 잠옷 바지도 샀다. 떡꼬치와 어묵을 한 개씩 사 먹었다.

  수원 가는 버스에 올라 통영에서 한 번 서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경고음이 울린다. 갓길에 버스를 세우고 기사가 내려가 점검하더니 냉각수 호수가 터졌단다. 할일 없이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앞에 있는 무료 와이파이 비번이 보인다. krwidegb00이다. 뭐가 저리 복잡한가 했더니 감이 온다. kr은 코리아, wide는 광역 g는 거제, b는 버스라는 소리 같다.

잠시 후 기사가 올라오더니 이 차는 갈 수가 없으니 내려서 다음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란다. 인천 가는 버스란다.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고장 나 내려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버스만 타면 서울 가는 줄 알았더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생각난다. 통영에서 43.8km 지점이다.

고속도로 순찰차가 와서 도와준다.

1020분쯤 섰는데 40분을 길바닥에서 기다렸다.

  인천 가는 버스로 갈아타려고 짐을 가지러 가면서 보니 버스 밑에 물이 흥건하다. 냉각수가 다 흘렀나 보다.

신탄진 휴게소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신나게 달리는데 또 차가 선다. 화물차 사고로 길이 밀린다는 것이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수원버스터미널에 내려 순환씨는 남편차로 가고 양숙씨는 택시 타러 갔다. 나머지 세 명은 택시를 타고 수원시청역으로 갔다. 수원시청역에서 전철을 타러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거꾸로 올라온다. 경고음이 빽빽 울리고 난리가 났다. 깜짝 놀라 내려보니 역방향이라 출입금지 표시가 있다. 거제도에서 몇 일 놀다 왔더니 전철도 못 탄다. 완전 촌년 됐다. 정자역에서 내려 신분당선 타고 논현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니 안심이 된다. 무사히 살아서 집에까지 온 게 다행이다.

 

  이번에도 순환씨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버스도 예약하고 매일 매일 교통편과 걸어야할 코스도 정했다. 선박표도 예약하고 콜택시도 불렀다. 모든 경비도 계산해서 얼마씩 내라고 카톡방에 올려준다. 숙소는 명수씨가 예약하고, 관광지 검색은 정연씨와 양숙씨가 도와줬다. 나는 완전 날로 먹었다. 오로지 임시 이빨 빠지지 않게 그것만 조심하면 되었다.

  이번 여행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고, 내라면 내는 여행이었다. 한 마디로 한 치 앞도 모르는 묻지 마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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