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8일 봄 정기 문화답사
[1] 2025년 봄 문화답사 일정.
● 일시: 2025.04.18. (금) 아침 8시 출발.
출발: 압구정 공영주차장.
서울 도착 예정:저녁 9시경
● 문화답사지: 강릉
- 하슬라 아트 월드
* 입장료: 17,000원
경로우대: 13,000원
하슬라는 강릉의 옛 이름이다. 특이한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피노키오관도 재미있다.
● 점심: 고선생 화덕 생선구이 정식
1인당 22,000원 예상 (음료, 주류 포함)
● 강문 해변 산책
근처에 작은 강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강문은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문이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솟대 다리도 있는데 솟대는 마을 앞에 세우는 긴 장대로서 잡귀의 침입을 막는 수호신이다. 장대 꼭대기가 세 갈래로 되어있고 그 위에 세 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앉힌다. 솟대의 어원은 삼한시대 마한의 소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 강문동에서는 솟대를 진또배기라고 부르는데 마을의 삼재를 막고 풍요를 기원하는 강문 진또배기제를 매년 음력 정월 보름, 4월 보름, 8월 보름에 지내고 있다.
해변에 네 잎과 다섯 잎 클로버를 파는 무인 판매대도 있다. 밑에는 가격이 표시되어 있고 위에는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우리나라도 정말로 신용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 강릉시립미술관(솔올) 관람
* 리차드 마이어 건축: 리차드 마이어는 백색의 건축가라고 불린다. 그 이름에 걸맞게 온통 유리 벽으로 되어있어 실내에서도 밖에 나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 입장료: 일반 1만원 (단체 할인 가능)
김환기 특별 전시 '뉴욕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4시부터 도슨트가 있다. 김환기는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에서 출생했다. 1931년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니혼(日本)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37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6.25 전쟁(1950~1953) 중에는 부산에서 이중섭, 장욱진 등과 교류하며 미술운동 전개했다.
1956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프랑스 체류 시기에는 한국적 요소(산, 달, 하늘 등)를 녹여낸 반추상 회화를 지속했다.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하며 완전히 추상적인 점화(點畵) 스타일을 확립했고
작은 점과 선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며 우주적 질서와 명상적인 미학을 탐구했다.
1974년 뉴욕에서 향년 61세로 작고했다.
그는 타스카 화랑 사건으로 사기를 당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화선지를 살 돈이 없어 신문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신문지의 기름이 유화 물감과 잘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는 하루 16시간씩 그림에 몰두하다 보니 허리와 목에 디스크가 생겼다. 미술과 음악을 접목시키고자 했으며 음악적 추상성을 나타냈다. 고국에서 본 고향의 문양을 이용해 콜라쥬 작품을 만들었고 경제적 이유로 여러가지 재료를 써서 실험적 시도를 했다. 68년부터 알 수 없는 기호로 작품 제목을 썼는데 시리얼 넘버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떠난 후 한국 화단에서 잊혀질 무렵인 1970년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김환기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반추상화에서 화면 전체를 점으로 찍은 추상화로의 변신은 당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작품의 제목은 시인 김광섭(金珖燮)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즉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 수록/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이다. 김환기는 이러한 자신의 점화에 대해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그의 일기에 쓰고 있다.
그는 김광섭 시인이 야구를 보러 가다가 쓰러져 1주일 동안 못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실은 이게 오보였다. 그 후 김광섭보다 김환기가 먼저 죽었다. 그는 ‘저녁에’ 라는 시를 드로잉 했고 드로잉도 작품이라고 했다.
김환기의 부인이었던 김향안 여사는 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다(1916년 ~2004년) 그림도 그렸는데 김환기 화백을 만난 이후에는 그를 서포트하는데 주력했다. 원래 본명은 변동림(卞東琳)이고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김환기 화백보다 3살 연하다. 1930년대 중반부터 문학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李箱)을 만나 1936년 결혼하였다. 하지만 이상이 일본에서 사망하자 김환기와 결혼했다.
김환기는 일기를 많이 썼는데 65년 1월 2일 일기에 점화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다. ‘아침부터 백설이 분분. 종일 그림 그리다. 점화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라는 글이 있다. 1974년 목디스크 수술 후 침대에서 떨어져 뇌출혈로 죽었다. 그의 작품에는 날짜가 적혀있는데 63년 12월 31일 작품도 있고 64년 1월 1일 작품도 있다. 하루에 한 장을 그렸다는 소리다. 하루에 16시간 씩 그림을 그렸으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 감상문
다 차려놓은 잔치상에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달려들어 퍼먹은 느낌이다. 이번 일정을 준비하고 빈틈없이 진행해준 분들게 감사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춥고 배고플 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아무 것도 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춥고 배고프게 살며 불후의 걸작을 남기는 것이 좋은지 그냥 잘 먹고 잘 살며 편안하게 살다 죽는 것이 좋은지 고민해 볼 일이다. 나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내 아이들도 후자의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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