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늘 그랬다.
이현숙
‘나를 아프게 한 건 항상 나였다.’라는 책이 있다. 이 글을 보며 나도 늘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 남편이 술 먹고 늦게 오는 날은 은근히 부아가 치솟았다. ‘아니 낮에 똑같이 근무했는데 누구는 술집에 가서 술 먹고 누구는 어깨가 빠지게 장 봐 가지고 와서 저녁밥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다 해놨는데 그제야 전화해서 늦게 오겠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나서 ‘에이~ 썅. 어디서 술 처먹다 콱 뒈져버려라.’ 하며 욕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아무 노트에나 개새끼 소새끼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게 몇 달 지나면 노트 한 권이 다 찬다. 내가 다시 봐도 이건 오물을 토해 놓은 것 같아 얼른 내다 버리곤 했다. 한 번은 남편이 이걸 봤는지 나가면서 “일기장에다 많이 쓰시오.” 한다.
생각해보면 나를 아프게 한 건 항상 나였고 이 덕에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배설을 한다. 뱃속에 똥이 가득 차면 배가 아프고 배가 아프면 똥을 싸야 시원하듯 나는 내 안의 오물을 배설하려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그 후 남편이 늙고 병들어 가니 그토록 좋아하던 술도 잘 못 먹게 되었다. 친구들 만나서 늦도록 술이라도 마시고 왔으면 좋으련만 친구들이 술 먹으러 나오라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나가지를 않는다. 친구들이 집 근처까지 와서 나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나가기는 하는데 일찍 들어온다. 술 먹고 다닐 때가 좋은 때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다. 맘 편히 술이라도 먹게 놔둘 껄 괜히 들볶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와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있을 때 잘하라는 옛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내 스스로 나를 아프게 하지 말고 남은 삶이라도 좀 현명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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