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모

2020. 5. 29. 쥐뿔도 모르면서

아~ 네모네! 2020. 6. 1. 13:32

쥐뿔도 모르면서

 

이현숙

 

  클래식 감상모임인 클래시모에서 성북동에 있는 한국가구박물관으로 문화답사를 갔다. 지인의 소개로 올해 1월 처음으로 이 모임에 가입했다. 클래식에는 일자무식이지만 그래도 음악을 듣는 재미에 빠져 매주 금요일마다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자격이 없는 내가 들어가서 그런가? 두 달도 못 되어 코로나 19사태로 기약 없는 휴강에 들어갔다.

  세 달을 쉬고 모처럼 문화답사를 한다고 하여 신바람 나게 한성대역으로 갔다. 6번 출구로 나와 엄 총무님이 가르쳐준 대로 2번 버스를 타고 가구박물관 앞에서 내렸다. 예전에 한 번 갔던 적이 있어서 낯익었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다가 회원들이 모두 모이자 체온 측정을 하고 각자의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37명이나 되는 관계로 1조와 2조로 나누어 가이드를 따라 우아한 한옥 대문을 들어섰다. 가이드 아가씨의 검정색 한복 조끼도 한옥과 잘 어울렸다.

  넓은 마당 한쪽에는 작약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문설주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임금님이 사는 궁의 문설주는 그 간격이 3미터이고 일반 사대부의 집은 2.4미터라고 한다. 이곳은 사대부집 형태인 2.4미터로 지었단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투명한 수반에 진달래 잎이 시원스럽게 꽂혀있고, 긴 탁자에는 여러 개의 수반에 작약 꽃을 꽂아놓아 보는 이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여러 가지 가구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장롱에 대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장롱이 옷을 넣어두는 하나의 가구로 생각했는데 장과 농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은 밑에 다리가 달린 것이고 농은 다리가 없이 그냥 바닥에 철썩 붙어있는 것이란다. 실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찍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쉬웠다.

  모든 가구는 못을 쓰지 않고 짜 맞추기로 되어있다. 소반도 옛날에는 1인당 한 개의 소반을 썼단다. 그래서 한 집에 30개에서 80개 정도의 소반이 있었다고 한다. 소반의 다리 모양에 따라 호족반, 구족반 등이 있고 상의 모양에 따라 각이 졌으면 각반, 둥글면 원형반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한 명씩 상을 차려 대접하려면 여인들 허리가 휘었을 것 같다. 상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식탁에 앉아 편히 먹는 지금 세대에 태어난 게 천만다행이다.

  회랑을 지나 연회장처럼 생긴 큰 방에 들어갔다. 중간에 계단이나 턱이 있으면 조심하라고 친절하게 일일이 일러준다. 이 방에는 여러 개의 초롱불이 놓여있다. 초롱불에는 손잡이가 달려있어 들고 다닐 수 있게 생겼다. 천장에는 긴 고리가 있는데 문을 매달아 두는 곳이다. 이 문을 분합문이라 하는데 큰 공간을 문으로 분리하기도 하고 합하기도 하여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지혜가 돋보인다.

  이 방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데 해외 유명 인사들이 방문했을 때도 이곳을 방문했다. 시진 핑 중국 국가 주석 내외도 이곳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배우 브레드 피트도 방문했고, CNN'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이며, 놀랍도록 감탄스럽다' 고 보도했던 명소이다. 2010년에는 G20개국 정상의 영부인 오찬, 2016년에는 한불수교 130년 만의 한·불 전략대회가 여기서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한복전시회를 개최한 것인데 왕비가 입는 옷 등 다양한 한복을 전시했다고 한다. 왕비는 총 17벌의 옷을 껴입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거운 것이 머리에 얹는 가채라고 한다. 왕비가 되려면 체력이 엄청 좋아야겠다. 연약한 여자는 옷과 머리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게 생겼다.

  안방으로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한다. 이 방에서는 자리에 앉아서 봐야 그 집 마님이 보던 경치를 그대로 음미할 수 있다. 한쪽 문은 안뜰을 보게 되어있다. 종들을 부를 수도 있고 마당 건너편에 있는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다른 한 쪽 문은 바깥 경치를 볼 수 있게 했다. 담을 낮게 만들어 한양 도성과 남산도 보인다. 바깥출입이 쉽지 않았던 여인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마당을 보니 돌로 된 그릇에 작약 꽃이 떠 있고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물도 먹고 몸에 끼얹기도 하며 놀고 있다. 그 옛날 안방마님도 이런 광경을 보았겠지 싶다.

  안방을 나오려니 신발을 밖으로 향하게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준 직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 관장은 외무부 장관과 8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일형과 여성 최초 변호사 이태영의 딸이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마구 버리던 가구들과 건축자재 등을 사들여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을 이렇게 전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준 관장님의 애틋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실내를 다 본 후 회랑을 지나 처음 들어왔던 문을 통해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으로 들어가는 곳에 불로문(不老門)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늙지 않는 문이란다. 이 문은 전체가 하나의 돌로 되어있다. 가운데를 잘라내어 계단 앞에 판석으로 깔아놓았다.

  판석을 밟고 마당으로 오니 마사토가 깔려있다. 방금 비로 쓸었는지 빗자루 자국이 선명하다. 매일 이렇게 비로 쓴다고 한다.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마사토를 깔면 배수도 잘 되고 걸을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서 방범 효과도 있단다. 조상들의 지혜가 여기도 스며있다. 마당 가운데는 나무를 심지 않고 이렇게 빈 공간으로 두었는데 여기도 깊은 뜻이 들어있다. 마당에 나무를 심으면 빈곤할 곤()자가 되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당 한 쪽에는 실로암이라는 연못이 있다. 실로암은 성경에 나오는 연못인데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가자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발랐다. 그리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다. 맹인이 실로암에 가서 진흙을 씻어내자 눈이 밝아졌다. 이 연못에 실로암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곳에 와서 한국가구와 한국 전통 가옥을 보고 한국문화에 번쩍 눈을 떴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단다.

  마당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하여 각자 흩어져 사진을 찍었다. 2조는 총무님이 있어서 그랬는지 단체 사진도 찍었다. 이래서 모든 모임에는 리더가 필요한가보다.

  마당에서 부엌 건물도 보고 굴뚝도 보았다. 굴뚝은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데 방이 일곱 개라 각각의 굴뚝이 따로 되어있다. 이렇게 모아놓으면 굴뚝 청소하기는 쉽겠다. 우리 어렸을 때 굴뚝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긴 솔을 들고 다니며 굴뚝 청소하라고 소리치며 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읽일

 

  굴뚝 옆으로 가니 장독대도 있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항아리들이 정겹다.

 

  건물 옆에 있는 소나무도 보고 땅에 붙은 주름잎도 보았다.

  가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누릉지 백숙집으로 이동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여기서 우리 자매가 사고를 쳤다. 엄총무님이 몇 번을 설명해줬것만 그새 깜빡 잊고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나는 분명히 첫 번째 사거리에서 직진하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동생들이 길상사 쪽으로 내려가랬다고 왼쪽으로 틀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인지능력이 떨어져 요새는 거의 사오정 수준이라 동생들 말이 맞겠지 생각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모르면 다른 회원들 뒤를 따라갔으면 좋으련만 쥐뿔도 모르면서 앞장서서 가니 1조 회원들 모두 우리를 따라왔다. 이렇게 무모하게 나서는 버릇은 어려서부터 생긴 우리 자매들의 특징이다. 아들 하나에 딸 여섯이다 보니 친정 엄마는 아들 챙기기에 바빴고 딸들은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앞장서서 설쳤다.

  한참 내려가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동생과 나는 네이버 지도를 켰다. 처음부터 켜고 왔어야하는데 빙빙 돌게 생겼다. 차를 운전할 때는 내비년 말을 잘 듣고, 걸어갈 때는 네이년 말을 잘 들어야한다는데 정말 난감하다. 한 회원이 어떤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 아래쪽으로 계속 갔다. 우리 자매는 꼬리를 내리고 슬슬 뒤로 빠졌다. 우리 때문에 뙤약볕에서 한참 고생을 하는데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이렇게 점잖은 가보다.

  한용운 거처를 지나 얼마쯤 가니 누릉지 백숙집이 나온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2조는 벌써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고생한 회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도 못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옆에 있는 갤러리 카페로 가서 커피까지 완벽하게 즐기고 일부 회원은 길상사 산책을 하러 가고 길바닥에서 헤매다 지친 우리는 그냥 집으로 향했다.

  비록 사고는 쳤을망정 이번 답사는 재미있고 유익하고 보람 있는 알찬 여행이었다. 가을 답사 여행도 은근히 기다려진다.